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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문근영은 위험해' "쉿! 문근영이 지구를…" 찌질한 잉여들의 생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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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문근영은 위험해' "쉿! 문근영이 지구를…" 찌질한 잉여들의 생쇼

입력
2012.01.2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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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위험해/임성순 지음/은행나무 발행·336쪽·1만2,500원

운둔형 오타쿠, 찌질한 문근영 광팬, 4차원의 음모론자. 고교 동창인 세 명의 '잉여남'들이 여배우 문근영을 납치한다. 돈이나 짝사랑 때문이 아니다. 용맹하게도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문근영의 배후에 있는, 미디어를 통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회사'의 지구 파괴 음모를 막기 위해서다.

<컨설턴트> 로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임성순씨의 두번째 장편 <문근영은 위험해> 는이런 황당한 키치적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당장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비슷한 설정이 아니냐는 태클이 들어올 법한데, 작가는 책 머리에 "이 글의 독창성은 에베레스트 정상의 공기만큼 희박하다. 어디서 본 듯하다거나 읽은 본 듯한 내용이 나온다면, 어딘가에서 본 것이나 읽어 본 내용이 맞다"고 적었다. 뻔뻔하게 들리지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이 소설의 세계관 자체가 '원본 따위는 없다. 존재하는 것은 복제와 짜깁기와 음모뿐이다'는 것인데.

찌질남 3인방이 문근영을 납치하게 되는 계기는 어느 날 셋이 문근영이 등장하는 똑 같은 꿈을 꾼 것. 음모론 맹신자인 성순은 '회사'에 의해 조종되는 문근영이 TV 생방송에 나와서 TV에 세뇌된 사람들을 일깨울 방아쇠가 될 말을 해 인류는 파국을 맞을 것이란 주장을 펴면서 좌충우돌의 납치 소동이 벌어진다.

소설은 '문근영 납치'라는 B급 영화의 기본 설정 속에 세 주인공이 대표하는 2000년대 오타쿠, 음모론, 팬덤 문화 속에서 흘러 넘친 온갖 재담과 패러디, 유머를 끌어들여 난장의 짜깁기 이야기를 펼친다. 특히 하위 문화의 집산지인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디시 폐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문장, 이들이 즐기는 애니메이션ㆍ영화ㆍ 만화ㆍ미국 드라마나 온갖 세계사적 음모론을 집대성했다고 할 정도다. 작가는 덧붙여 노란 말풍선의 각주까지 달아서 그 용어나 문장의 유래를 친절하게 설명하는데, 이 각주만으로도 잉여를 자처하는 백수 세대의 하위 문화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은 디시 폐인에 대한 농담조의 헌사이자 유머로 읽는 폐인 문화의 백과사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소설의 농담이 어떤 식인지를 보여주는 한 대목. 성순의 여자친구 민주가 '벤쳐널 옵셔스 코리아'(BBK가 연상되는)라는 인터넷 금융회사를 차린 후 성순에게 투자를 권하며 "완전 747 점보 제트기처럼 날아 갈거야"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붙여진 각주는 이렇다. "매년 7퍼센트의 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 4만불, 세계 7대 경제강국이라는 가카의 공약과는 무관하다.(후략)"

소설은 쉼 없는 농담과 풍자가 버무려진 질퍽한 이야기 쇼 한편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도 담아낸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이론과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 등이 거론되는데, B급 정서 속에서 잡다한 인문학적 지식을 요리한 작가의 솜씨가 발군이다. 추천사를 쓴 박상수 평론가는 "임성순은 이야기의 재미를 알고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는 현실, 그 커튼 너머를 들여다볼 줄 아는 작가다"고 평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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