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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코닥의 몰락, 레드카펫도 못 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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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코닥의 몰락, 레드카펫도 못 깔 위기

입력
2012.01.2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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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대로에 위치한 코닥극장은 필름 제조로 유명한 이스트만 코닥(코닥)의 자존심을 상징한다. 3,401석으로 이뤄진 이 극장에선 2002년부터 매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이 열려왔다. 코닥은 세계적 영상기업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2000년 이 최신식 극장이 완공되자마자 이름 사용권을 확보했다. 20년 동안 7,500만 달러(약 825억원)라는 거금을 극장주에게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최대 영화단체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이사회는 최근 내년 시상식 장소를 바꿀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노키아극장 등 로스앤젤레스의 다른 극장들이 코닥극장과 내년 아카데미상 시상식 유치를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됐다. 코닥은 거금을 쓰고도 세계적인 영화 축제를 잃게 될 처지에 놓인 셈이다. 미국 연예주간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아카데미 시상식장 변경 가능성은 최근 코닥의 재정 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AMPAS의 결정이 나온 뒤인 지난 19일 코닥은 미국 연방파산법에 따라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코닥은 금융권의 자금 지원으로 한숨을 돌리게 됐으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등 자구 노력을 보여야 살아남게 됐다. 아카데미 시상식장 변경 위기는 코닥이 겪을 재난의 전주곡에 불과했던 것이다.

1975년 코닥 스스로가 첫 개발한 디지털 카메라가 제국 몰락의 시초였다. 그 후 시류를 타지 못한 코닥은 좌초의 위기에 처했다. 1990년대 15만명에 달하던 코닥의 직원 수는 이미 1만7,00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영화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한 전달 매체 '필름'은 과연 코닥과 함께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 필름은 디지털에 의해 완전히 대체 될 수 있는 시대의 퇴물에 불과한 것일까.

1880년 조지 이스트만이 설립한 코닥은 후지필름의 추격에도 100년 넘게 사진과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며 필름 제국을 구축해왔다. 대다수 상업영화 촬영에 쓰이는 35㎜필름과 저예산영화 촬영용 16㎜필름을 첫 개발한 코닥은 영화 필름 분야에서 일종의 철옹성이었다. 코닥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영화 촬영 관련 데이터를 무기로 시장지배를 강화했다.

2000년대 들어 영화계가 디지털의 장대한 물결에 몸을 실으면서 코닥의 위상은 추락했다. 충무로는 200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영화를 실험적으로 만들다가 이제는 영화 대부분을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디지털 촬영은 필름보다 30% 가량 제작비를 줄일 수 있고, 필름 값에 개의치 않고 무한대로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필름보다 간편한 후반작업도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름의 색감과 깊이 등을 보강한 디지털 촬영 장비가 등장하면서 필름 촬영은 연간 몇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줄었다.

극장들도 필름 영사기 대신 디지털 영사기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2009년 3D영화 '아바타'의 흥행 성공은 극장의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했다. 프린트 한 벌당 200만원 정도인 필름과 달리 스크린 당 80만원 가량 드는 디지털 배급은 영화제작사에도 유리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국내 스크린 2,003개 중 디지털 상영이 가능한 곳은 전체의 56.6%(1,133개)였다.

코닥의 파산보호신청은 필름의 사망선고나 다름없다지만 필름을 열렬히 원하는 곳은 여전히 존재한다. 베니스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한적 있는 대만의 차이밍량(蔡明亮) 같은 몇몇 감독들은 필름이 전할 수 있는 미학적 가치 때문에 필름 촬영을 고집한다. 광고 감독 출신으로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만든 미국의 마이클 베이 감독도 필름을 선호한다.

영화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세계의 여러 영화보존기관(필름 아카이브)들은 필름과의 열애를 그만둘 수 없는 대표적인 단체다. 오성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부 차장은 "영화 보존에 있어 필름만큼 검증된 물질은 아직 없다. 디지털은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저장 내용이 다 날아갈 수 있지만 필름은 일부 훼손만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영화로 꼽히는 뤼미에르 형제의 '공장에서의 퇴근'은 지금도 필름 상영이 가능하다. 필름이 100년 이상 보존될 수 있음을 원조 영화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문화 유산으로서의 필름 영화를 원형대로 보존해야 하는 것도 필름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영상자료원은 2010년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 '만다라'(1981)를 디지털 기술로 복원해 필름으로 옮겨 상영회를 열었다. 세계 77개국 151개 단체가 가입한 국제영화보존기관연맹(FIAF)은 2008년 연맹 설립 70주년을 맞아 '필름을 버리지 말라'(Don't Throw the Film)라는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선언문은 "필름 영화는 우리와 과거의 업적을 연결해준다"며 "필름은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닥의 파산보호신청은 필름 값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영화보존기관들은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다. 한국영상자료원 관계자는 "보존용 필름은 코닥 제품만 쓰고 있다. 당장 문제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코닥의 위기에 대비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상자료원은 지난해 필름 구입에 1억4,000만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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