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일본 민법으로부터 가져온 협의이혼제도는 오랜 기간 동안 남편의 일방적 이혼을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만 작용했다. 실질적인 협의이혼은 양성 평등을 강화한 2008년 6월 민법 개정을 통해 가능했다. 개정 민법의 협의이혼제도의 근간은 이혼숙려기간. 이혼 의사가 있더라도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3개월, 없는 경우 1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해 충동적인 이혼을 방지하고 미성년 자녀의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이후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대사인 "4주 뒤에 뵙겠습니다"는 숙려기간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구가 됐다.
하지만 이혼숙려를 거쳐 협의이혼에 이른 이들의 절반 이상이 숙려기간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협의이혼제도 실시 3년을 맞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법원의 의뢰로 연구한 '협의이혼 제도의 운용실태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12월 미성년 자녀를 두고 협의이혼 절차를 거친 신청자 351명 중 141명(40.2%)이 숙려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답했고, 숙려기간 자체가 필요 없다고 답한 인원(67명)을 합하면 59%에 달했다. 기간이 적절하다거나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은 143명(41%)이었다.
미성년 자녀가 없는 이들도 숙려기간이 길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143명 중 숙려기간이 불필요하다는 응답이 21%(30명), 단축해야 한다는 응답이 16.8%(24명)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조사대상 전체의 53%가 숙려기간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고 밝힌 셈이다.
연구원은 신청자들이 숙려기간을 '이혼 결정을 바꾸게 하는 기간'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부정적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분석했다. 숙려기간의 본 취지가 미성년 자녀의 복리대책을 마련하고 이혼 후 실질적인 삶의 대책을 마련하는데 있지만, 이런 면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연구원은 숙려기간 중 상담을 의무화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담을 통해 자녀 양육 등 문제를 풀 수 있고, 이러한 문제 없이 이혼 의사가 확실할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숙려기간을 단축하면 된다는 것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상담제가 정착되지 않았지만 긍정적 효과는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법원도 연구 결과에 흔쾌히 동의했다. 상담위원을 충분히 확보했는데도 신청자가 없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인적 자원은 충분하며, 추가 예산도 마련됐다"며 "연구원의 제언이 현실화 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협의이혼 제도 실시 전인 2007년 이혼 건수는 1만5,200건에서, 실시 후인 2010년엔 2만4,800건으로 9,600건이나 증가했다. 또 이혼 취하율은 2007년 16.4%에서 2009년과 2010년에 각각 30.9%, 33%로 상승, 이혼과 이혼취하가 모두 늘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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