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배모(31)씨는 작년 말 서민지원 대출상품인 새희망홀씨를 신청하러 은행을 찾았으나 낙심한 채 돌아섰다. 은행, 대부업체 등의 기존 대출을 성실히 갚아왔던 터라 가능하다 여겼으나 거절당한 것. 배씨는 "은행마다 조건이 달라 4개 은행을 전전했지만 헛수고였다"며 "신용등급이 9등급이라 어렵다는 말을 하더라"고 밝혔다. 신용등급 8등급인 회사원 이모(36)씨도 전세 1,000만원을 올려달라는 주인의 요구에 새희망홀씨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300만원 월급에 상환 능력과 의지가 충분한데 신용관리를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새희망홀씨가 과연 서민을 위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은행들이 저신용ㆍ저소득 계층을 지원하겠다며 내놓은 새희망홀씨 상품과 관련 대부분 은행들은 지난해 대출 목표치를 초과했다고 발표했으나,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이 이뤄지고 있는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6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작년 16개 은행은 새희망홀씨 대출을 통해 15만6,654명에게 1조3,655억원을 지원했다. 이는 은행들의 목표액 1조1,679억원을 16.9% 초과한 금액. 수협(87.5%)을 제외한 15개 취급은행들이 최대 36.5%까지 목표액을 초과했다.
새희망홀씨 대출은 저소득층(연소득 3,000만원 이하)이나 저신용자(연소득 4,000만원 이하인 5~10등급)에게 연 10% 안팎의 금리로 최대 2,000만원까지 무담보로 빌려주는 상품. 2010년 11월 출시 이후 작년말까지 총 1만9,294명에게 1조6,332억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1조5,000억원으로 목표치를 늘렸다. 금감원 서민금융지원실 관계자는 "작년말 기준 새희망홀씨 연체율은 1.7%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라며 "새희망홀씨가 대표적인 서민금융지원제도로 정착되고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그러나 저신용자들은 "8~10등급은 신청해도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시중은행 7곳과 금감원에 신용등급별 지원실적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했다. 지원실적을 발표한 금감원은 등급별 지원자료는 집계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은행들도 "집계가 어렵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내세우며 공개를 꺼렸다.
지원실적은 홍보하면서 지원대상을 공개하지 못하는 새희망홀씨의 '불편한 진실'은 정부가 밀어붙이자 은행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가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전년도 영업이익의 10%를 새희망홀씨로 판매해야 한다'는 정부 지침은 따라야 하고, 그렇다고 부실 위험이 큰 저신용자들에게 무작정 빌려줄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5, 6등급 위주로 대출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은행 고위관계자는 "정부는 은행별 할당량을 정해주기 때문에 이를 채우기 위해 일반 대출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우량 신용자들에게까지 새희망홀씨를 권유한다"고 털어놓았다.
작년 1~8월까지 전체 새희망홀씨 취급액이 1,000억원을 밑돌다가 이후 급격히 증가한 것도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서둘다 당초 취지를 퇴색시킨 간접증거로 보인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시 4~6등급 사이의 고객에게 대출이 집중됐고, 심지어 1~3등급도 많았다"고 귀띔했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이 맡아온 저신용자 대출을 은행이 직접 담당하기는 힘들고 모든 서민계층을 은행이 커버하라는 정책은 무리"라며 "효율적인 서민지원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