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보다는 크지만 아이패드 갤럭시탭에 비해서는 턱도 없이 작은 7인치 화면. 3G 서비스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그 흔한 카메라도 탑재되지 않은 저장 공간 8GB짜리 저사양 태블릿PC. 아마존(Amazon)이 지난해 9월 199달러(한화 약 22만4,000원)에 출시한 이 저렴한 '스펙'의 '킨들 파이어'(Kindle fire)가 애플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을 제대로 홀린데 이어 국내 시장도 서서히 영향권에 넣고 있다.
미 CBS 보도에 따르면 출시 첫날 10만여대가 팔려 시장을 놀라게 했던 킨들 파이어는 출시 한달 뒤 지난해 4ㆍ4분기 동안 미국에서만 무려 550만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미 언론들은 "아이패드에 비해 볼품없는 아마존 킨들 시리즈의 이같은 인기는 전자책 콘텐츠가 2012년 정보기술(IT) 분야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불황이라는 동토 속에 묻혀 있던 전자책 시장의 맹아가 아이패드에 이은 킨들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MSNBC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킨들용 전자책 판매량이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며 "이는 생소했던 전자책이 어느새 선물로 주고받기 편한 아이템으로 변했음을 뜻한다"고 전했다. 킨들 시리즈의 대중화로 누구나 부담 없이 전자책을 선물로 선택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킨들 시리즈의 인기몰이가 불러온 미국 전자책 시장의 활황 무드는 국내 출판계에도 큰지영향을 미치고 있다. 1년여 전만 해도 "제값 받고 팔 수 없는 콘텐츠"라며 인기 출판물의 전자책 판매를 주저하던 출판사와 유통사들이 앞다퉈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전자책 판매 비율은 2010년 1%대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지난해 2%를 상회한 것으로 집계됐고, 일부 인기 전자책(김어준의 등)은 10%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을 견인하기 시작한 미국 시장에서 전자책 판매 비율이 출판시장의 1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일부 전문 분야 콘텐츠에만 집중됐던 전자책 시장이 베스트셀러 등 대중적 출판물까지 보듬게 된 것도 큰 변화다. 성대훈 교보문고 디지털콘텐츠사업팀 부장은 "지난해 12월 현재 종이책 종합 베스트셀러 20위 이내 도서들 가운데 전자책으로 출간된 비율은 60%에 달한다"며 "출판사가 종이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무너지고 있으며, 이제 베스트셀러 1위부터 4위 정도까지는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출간할 정도가 됐다"고 설명했다.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2010년 기준으로 지난해 (전자책 시장은) 최소 5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2007년 킨들 시리즈의 첫 단말기가 출시된 후 3년여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본 국내 출판업자들이 시장을 보는 눈을 새롭게 뜬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전망은 낙관적이다. 기본적인 전자책 리더(Reader)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 판매량이 이미 2,000만대를 넘었고 올해 안에 3,500만대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른바 '미디어의 용광로'라 불리는 스마트 미디어 세상이 가속화하면서 '단말기가 많이 팔릴수록 콘텐츠도 비례해 팔린다'는 공식이 전자책 시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증명될 기세다. 특히 이미 교육 전문 출판사들이 손익분기점을 넘길 정도로 성공을 거둔 도서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시장의 확대가 기대되고 있다. 또 정부가 2015년 전자 교과서 도입을 발표한 이후 검인 교과서는 물론 참고서, 학생 권장도서 분야에서 막대한 전자책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여 가까운 미래에 전자책이 종이책 비율을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장 사무국장은 "제작비 문제로 종이책 출간이 어려웠던 좋은 콘텐츠들이 전자책으로 만들어지는 사례가 늘어나면 출판시장 호황은 물론 도서문화 저변 확대도 기대된다"며 "다만 고가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전자책 전용 단말기 시장의 변화는 숙제"라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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