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장수기업', '백색가전 공룡'….
미국 가전업체인 월풀에 따라 붙는 수식어는 많다. 100년 역사를 가진 기업(1911년 설립)답게 월풀은 오랫동안 가전의 아이콘이었다. 1990년대까지도 거의 모든 미국 가정이 월풀 이 만든 냉장고와 세탁기를 갖고 있었고, 미국 가전시장을 지배한다는 건 곧 세계 가전시장을 지배한다는 얘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최고부자들만 소니TV에 월풀 냉장고와 세탁기를 갖고 있었다.
이런 월풀이 지금 국내 가전업체들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에 반덤핑제소까지 쓸 수 있는 법적 수단은 다 동원하고 있다. 삼성과 LG에 밀려 생사조차 불투명해진 월풀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월풀이 제기한 냉장고 특허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이번 소송은 양문형 냉장고의 '물과 얼음 분배장치'(디스펜서)에 물을 빠르게 채울 수 있는 기술을 누가 먼저 발명했는지를 두고 벌인 것으로, LG전자가 관련 기술 특허를 따내자 월풀이 먼저 발명했다며 2009년 제소한 사안이다. 미국 특허청은 이에 대해 "월풀이 적합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LG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월풀은 이와는 별도로 ▦지난해 12월말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대해 ▦앞서 3월엔 두 회사의 하단 냉동형(프렌치도어) 냉장고에 대해 각각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및 상무부에 반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월풀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상대로 전방위 공세에 나서는 건, 두 회사로 인해 안방인 미국시장에서 더 이상 설땅이 없어졌기 때문. 시장조사기관인 스티븐슨 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미국 하단냉공고형(프렌치도어) 냉장고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24.0%(1위), LG전자는 21.7%(2위)를 차지한 반면 월풀은 5.7%에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에서도 LG전자는 22.8%, 삼성전자는 17.6%로 1,2위를 기록했고 월풀이 14.6%로 뒤를 따랐다.
미국 백색가전 시장은 규모도 세계 최대인데다, 프리미엄 제품이 주류를 있어서 향후 성장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평가 받고 있다. 미국시장에서 경쟁사에 밀리면 미래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 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월풀의 매출을 살펴보면 2006년 181억 달러를 기록한 후 2010년 184억 달러까지 계속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현재 월풀은 미국 시장을 국내업체들에게 내주고 신흥시장 등 중저가 시장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월풀이 국내 가전업체에 밀린 이유는 대용량과 저전력, 사용자 편의성 등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갈수록 국내 업체와의 격차는 벌어질 것이고 그만큼 특허나 반덤핑제소 같은 법적 공세도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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