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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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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입력
2012.01.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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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이 들어서서 신기한 일이 아주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건 이회창이 이렇게 고상하고 고결하고 깨끗해 보이는 날이 올 줄이야, 하는 것이다. 사법살인은 둘째 치고 아들 군대 안 보냈다고, 그것도 우리가 보기에도 정말 신기할 정도로 비쩍 마른 아들, 그 아들을 군대 안 보냈다고 비판했던 우리가 너무 모질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말 멀쩡하진 않았던 것 같아, 하면서 뒤늦게 이회창이 안쓰러운 생각이 막 든다. 정말 말랐던데, 하면서 그의 가냘픈 아들 실루엣이 눈앞에 가물가물한다. 그게 이 정부 들어서 아들 군대 안 보낸 것 정도는 너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려서 그렇다. 아들은 무슨, 본인도 안 간 사람 천지인데 그만하면 괜찮은 사람한테 우리가 너무했어, 하고 멍하니 생각하다가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깜짝 놀란다. 이게 MB 정부의 도덕성의 현실이다. 안 그래도 그들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귀신같이 아는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참칭하는 바람에 나는 그게 무슨 뜻일까 한참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는 그렇게 믿으니까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자신을 할 텐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세대차이를 가지고 부모님과 싸운 친구 덕분에 그 실마리를 조금은 찾았다.

친구가 신경질을 내며 어른들은 아무것도 몰라, 그러기에 왜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하고 물었더니 친구가 말하기를 아저씨들은 생각이 딱 고정되어 있다니까 박정희 전두환 이런 때로! 하며 가슴을 쾅쾅 쳤다. 그걸 보니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의 기원을 조금 알 것 같았다. 툭하면 삼청교육대 보내 버려야 된다고 화내던 아저씨들 기억도 났다. 아, 이 사람들한테는 그 정권의 인상이 너무 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앞에는 괄호가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비하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뜻이었다. 사람 잡아 가두거나 고문하지도 않고 거리에 툭하면 최루탄 쏘지도 않고 군대 보내서 사람 학살한 것도 아닌데 이만하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지, 이런 뜻이었던 거다. 하고 대답했다. 그 생각이 들고 나니 무서웠다. 학교 성적이 그렇듯이 한번 떨어진 걸 높여 놓는 건 어렵기 짝이 없다. 돈도 모으기가 어렵지 쓰면 좍좍 써지지 않는가. 우리는 모두 투표하겠다고 지금 의욕이 넘친다. 어느 당이나 현수막에 'MB정권 심판'을 써놓지 않는 당이 없다. 정권심판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 이렇게 낮아진 도덕성을 다시 올려놓는 것이 과연 순조로울까.

이를테면 곽노현 교육감 사건 같은 게 그렇다. 나는 그 사건의 자세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사실은 알고 싶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 사람한테 이상하게 정이 가기 때문에 그렇다. 그 사람이 나를 몰라도 나는 그 사람을 어쩐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은 죄 좀 지었으면 어때, 너희들은 이것보다 훨씬 더한 짓도 저질렀잖아! 라는 게 그 사건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다. 이것밖에 안 되는 스스로가 물론 유치하다. 그러나 정이라든가 의리라든가 뭐 그런 것의 본성이 원래 단순하기 마련이다. 한 동네 백수가 알지도 못하는 서울시 교육감에게 이런 끈끈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곽노현에게 우리 편 건드리지 마, 하는 속마음이 있는데 하물며 주군을 살해당한 슬픔과 원한에 사로잡힌 가신들은 어떨 것인가. 정권이 바뀌기만 하면 이 떨어진 도덕성은 순조롭게 회복될 수 있을까. 도둑질 엄청 하네, 그래 살인만 안 하면 됐지 뭐 하는 식으로 우리 국민들도 4년 동안 MB정부에 의해 끊임없이 위정자들의 도덕성을 포기당하는 희한한 교육을 받고 말았다. 다음 정권의 도덕성은 어떨까. 또 괄호 달려서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아니기를 간절히 빈다. 4년 동안 눈이 너무 낮아져서 웬만한 흠결은 흠 같지도 않는 게 거참 걱정이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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