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가 당 대표 및 최고위원 폐지문제를 논의한다고 한다. 이상돈 비대위원이 발제한 대표 폐지론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주장으로, 대표를 없애는 대신 원내대표가 중심이 되는 원내정당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취약해지는 조직 관리나 선거 지원은 전국위원회가 맡도록 하자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미국식 정당체제로 가자는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돈이 뿌려지는 이유는 공천권, 당직임명권, 국회직 임명권 등 대표의 권한이 너무 크기 때문이니 아예 이 자리를 없애버리자, 또 원내대표가 중심이 되면 국회의원들이 거수기가 되는 당론 정치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게 대표 폐지론의 핵심이다. 나름대로 타당한 측면이 있고, 쇄신책을 내놓아야 하는 비대위로서는 검토해볼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정당체제 개편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미국처럼 경량 정당체제가 적합한지, 유럽식 중앙당 체제가 더 현실적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한국의 정당들이 너무 허약해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정치학자들도 적지 않다. 미국의 경우 3권분립이 확고하게 자리잡아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확실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처럼 대통령이 전권을 쥐는 제왕적 체제에서 원내 정당만으로 견제와 균형의 정치가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
돈 문제만 하더라도 대표 폐지가 해결책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전국위원장이나 원내대표에 권한이 집중되면, 그 자리를 둘러싼 또 다른 잡음이 일어날 수 있다. 독일 정당들은 중앙당, 지구당이 미국보다 훨씬 강고하며 대표도 있지만, 돈 살포 추문에 휘말린 적은 없다. 자리의 문제만이 아닌 정치문화, 수준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오히려 대표의 가장 큰 권한인 공천권을 국민이나 당원에게 돌려주는 국민경선제 확대나 모바일투표 도입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의원들의 거수기 전락도 공천권이 국민에 넘어가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으며 크로스보팅의 제도화로 보완할 수 있다.
대표 폐지론은 따로 떼어서 추진할 별개 사안이 아니라 정당제도 전반의 개혁 속에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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