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하균(38)의 전성시대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브레인' 덕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KBS 연기대상 그랑프리를 거머쥐었고, 꽃미남 배우에게나 붙던 '하균앓이'같은 유행어의 축복 속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주 종목인 영화에서 얻은 인기가 아니라 좀 서운하진 않을까.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하균은 "덕분에 팬들이 내가 출연한 영화를 다시 찾아본다"며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끝난 것 같지가 않아요. 반응이 좋아 다행이지만 언제나 아쉽죠. 모니터 하다 보면 부족한 것도 많이 보이고요. 그래도 지난 3개월, 많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습니다. 팬들로부터 '조공'(팬들이 스타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도 처음 받아봤어요.(웃음)"
신하균은 어느새 욕망의 화신 이강훈이 아닌 수더분한 노총각 신하균으로 돌아와 있었다. 촬영을 시작한 이래 거의 매일 세트장에서 보내느라 드라마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도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신하균의 인기는 '브레인'의 시청률 수치 이상이었다. 시청률은 히트작의 기준인 20%에 미치지 못했지만 신하균의 연기는 말투와 표정, 의상, 심지어 필체까지 화제가 됐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신경외과 전문의로 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브레인'은 이강훈의 성장 드라마인 동시에 신하균의 원맨쇼와 다름 없었다.
신하균은 이강훈을 일러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이강훈을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것도 "본인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굉장히 흠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도 이강훈이 어머니를 잃고 병원 벤치에서 한 할머니 환자와 이야기하며 눈물짓는 대목이다. "강한 척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여린 모습들,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모습들을 보며 많은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신하균이 만들어낸 이강훈은 드라마의 부족한 부분을 상쇄할 만큼 강렬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제작 초기부터 '브레인'이 그의 몫인 건 아니었다. 몇몇 배우를 거친 이강훈 역할은 촬영 시작 2, 3주 전까지도 공중에 떠 있었다. 신하균은 대본을 받아 읽고 다음날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이야기의 방향이나 초점, 이강훈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충분히 와 닿아서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신하균이 이강훈에게 매력을 느낀 건 아마도 자신과 정반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강훈은 까탈스럽고 오만하며 빈정거리는 게 일상인 안하무인 캐릭터. 그는 "감정 표현도 서툴고 내가 최고라는 생각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어서인지 이강훈을 연기할 때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말했다.
신하균은 자신에 대해 "말주변도, 내세울 만한 것도, 보여줄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프라모델 조립이나 등산을 빼면 송강호 정재영 박해일 등 친한 배우들과 술 마시는 게 일상의 전부라고. "여자들에게 무뚝뚝한 편이라 그런지 연애할 기회도 좀처럼 안 생긴다"던 그도 이젠 후배들이 결혼하고 아기 낳는 걸 보며 조금 조바심을 느낀단다.
신하균은 화면 밖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배우 신하균이 아닌 작품 안의 인물"로만 기억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평소에는 무기력한데 연기만 하면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할 정도로 연기는 그의 삶에 있어서 거의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브레인' 촬영을 마친 지 1주일도 안 됐지만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했다.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첫째 기준은 "새로운 작품, 지금껏 안 해본 역할"이다. "'브레인'도 그랬듯 센 캐릭터를 하고 싶어 작품을 선택하진 않습니다. 제가 연민을 느낄 수 있고 제가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인물이면 어떤 작품이든 좋아요. 지금까지 안 해본 거 앞으로 다 해보고 싶어요.(웃음)"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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