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민영화 논란이 거세다. 2015년 개통 예정으로 서울 수서를 출발해 부산과 목포로 각각 향하는 고속철도(KTX) 운영권을 민간에 넘기는 내용을 두고 끝장토론까지 열렸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요금인하 여부와 대기업 특혜, 안전 문제 등이 주요 쟁점이다. 국토해양부 등 찬성 측은'경쟁에 따른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경제 기본원칙을 강조한다. 113년 철도 독점체제에 종지부를 찍어 요금인하 등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강근식 한국철도시설공단 시설사업본부장은 "철도개혁은 수십 년 전부터 정상적인 법 집행을 통해 진행되려고 했으나, 기득권 세력 등에 의해 계속 실패한 만큼 대기업 특혜는 없다"며 "경쟁을 통해 요금인하와 만성적자 체질개선 등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코레일 등 반대 진영에서는 정권말기 급히 추진되는 철도 민영화야 말로 국민안전을 담보로 한 대기업 특혜라는 입장이다. 요금인하도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김성희 고려대 경제학과 연구교수는 "민간 사업자에 대한 운영권 분할매각은 통째로 민영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국가기반시설에서 민영화의 새로운 수법"이라며 "현 정권은 '먹튀'프로젝트라는 의혹에 대해 해명해야 할 일만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찬성
철도개혁은 최근에 뚝딱 만들어져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45년 전인 1967년 국제개발기구가, 또 80년 세계은행이 철도차관 제공 조건으로 국영체제의 철도청 공사화를 주문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89년 철도공사법 제정, 92년 연기 결정, 같은 해 11월 96년 공사화를 목표로 법 개정, 95년 공사법 폐지 등 때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철도 국영 체제 투자 및 운영 비효율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각계 논의를 거쳐 참여정부 때인 2003년에 비로소 건설 및 시설관리는 국가가, 운영은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철도산업구조개혁이 단행됐다. 여야 합의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철도사업법 등 관련법도 제정해 지금의 철도산업 기틀을 마련했다.
관련법에 따르면 철도운영은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국가 외의 자가 운영함을 원칙으로 하고, 정부는 운영부문 경쟁력 강화, 운영의 안전 확보, 공정한 경쟁여건 조성에 관한 시책을 수립한다. 철도운영에 정부 면허도 받도록 했고, 운임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고시한 운임 상한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따라서 KTX 운영을 민간에 개방해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정부의 정상적인 법 집행이다. 그런데도 철도개혁은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철도노조와 코레일, 선거를 의식해 정치적 이슈로 만든 정당 및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이번에도 포기한다면 철도독점을 깰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KTX는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사업비의 50~60%를 부채로 건설한다. 건설 부채가 17조 원으로 하루 이자가 23억 원이며, 30년 후에는 70조 원에 하루 이자만 9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민영화 및 특혜의혹, 요금인상, 벽지노선 감축, 안전위협 등 허구와 왜곡이 판을 치고 여기에 동조하는 세력의 목소리도 크다.
경쟁 도입은 국가가 시설을 소유하고 운영권만을 한시적으로 민간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철도시설을 매각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공기업 독점 운영에서 일부 구간을 민간에 개방하는 즉, 독점운영이 경쟁운영으로 바뀔 뿐이다. 선로사용료를 많이 납부하겠다는 사업자에게 운영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특혜는 더욱 아니다.
88년 대한항공의 독점 시장에 아시아나항공 진입, 2005년 저가항공사 진입 후 항공료 인상 억제는 물론 고품질의 서비스와 소비자 선택권이 대폭 확대된 사실도 엄연히 존재한다.
철도는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운임을 비교하면 그렇지도 않다. 서울-대전구간 운임을 예로 들면 고속버스 9,200원, 새마을 1만5,300원, KTX 2만3,700원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지만 철도의 원가를 보면 답이 나온다. 인건비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다. 독점 타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렴한 운임과 질 좋은 서비스 혜택을 국민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경쟁체제가 되면 벽지노선의 열차운행이 줄어 들것이라고 오도한다. 코레일은 벽지노선 등 PSO(공익서비스) 보상으로 정부로부터 매년 3,000억 원 가량을 지원받으면서 건설부채를 상환해야 할 고속철도 수입으로 일반철도에 교차지원하고 있다. 이는 고임금ㆍ비효율 구조의 일반철도에 이중으로 지원하는 결과다. 정부는 PSO 지원은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레일이 운영을 포기하는 노선은 최저 보조금 입찰제를 통해 정부가 민간 운영자를 선정한다. 벽지노선이 없어진다는 것은 철밥통을 지키려는 왜곡 선전에 불과하다.
경쟁체제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는 항공사, 버스회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서울지하철 1ㆍ3ㆍ4호선을 서울메트로와 코레일이 함께 운행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된 적이 있는가. 역주행을 밥 먹듯이 하는 조직이 아직도 관제업무를 국가가 챙기면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해괴한 논리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철도 경쟁도입은 2015년 신규노선 개통에 대비해 지금이 적기다. 코레일의 기득권 지키기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버리고, 상식과 합리에 바탕을 둔 국민의 입장에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강근식 한국철도시설공단 시설사업본부장
●반대
1999년 IMF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 철도 민영화 요구도 드셌다. 공공독점의 비효율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묻지마 식 민영화와 해외매각의 바람이 거셀 때였다. 이 때 조언을 구하러 온 필자에게 정치성향으로 자유주의자이자 세계철도연맹의 총재를 지낸 프랑스인 왈라브씨는 "프랑스에선 보수주의자도 철도 민영화는 꿈조차 꾸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유럽통합에 맞춰 대륙철도의 주도권을 둘러싼 프랑스와 독일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철도를 민영화하거나 분할해서 매각하는 일은 바보짓이라고 했다. 그는 유럽통합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외국 철도 차량의 진입을 허용하는 것 말고 철도를 분할 운영한다는 것은 "철도 시스템의 기술적 특성과 망산업의 규모의 경제 효과를 전혀 모르고 하는 문외한의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2012년 한국에선 새삼 철도 민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강남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KTX노선의 운영자를 민간 사업자로 선정한다면서 국토해양부는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독점타파와 효율화'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철도를 분할 민영화한 영국은 빈발한 철도사고와 100%가 넘는 요금인상의 문제에 직면하다가 시설회사의 파산으로 재국유화의 방향으로 선회했다. 과연 우리나라 국토부는 철도를 분할하고, 민간 경쟁을 도입할 묘수라도 만들어 낸걸까? 그렇지 않다면 이명박 정권의 마지막 남은 대형 이권사업이 재벌특혜나 국부 해외유출로 귀결되는 먹튀 프로젝트라는 의혹에 대해 해명해야 할 일만 남는다.
철도와 같은 망산업은 초기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어 진입이 제한될 수밖에 없고 독점으로 운영할 때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휘되는 자연독점의 성격을 가진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국토부는 철도망 전체를 민영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시설은 여전히 국가소유이고, 운영사인 한국철도공사와 경쟁하는 민간사업자가 일부 구간을 분할 운영하며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 사업자에 운영권을 분할 매각하는 것은 통째로 민영화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국가기반시설에서 민영화의 새로운 수법이다. 그러나 영업거리가 3,500여 km에 불과한 한국 철도에서 분할 운영은 범위의 경제 효과를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근거로 얘기하는 일본의 경우 2만km가 넘는 영업거리를 6개사로 분할한 것이다. 철도 시설에 드는 막대한 건설비를 운영사가 시설이용료 형태로 분담하는 것도 이용자가 분담하는 도로, 항공, 항만과 다르다. 무엇보다 철도에서는 운영사의 분할을 통한 경쟁의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다. 분할 운영되는 나라의 철도는 범위의 경제 효과, 안전성 등을 고려해 대부분 지역별 독점의 형태를 띠게 된다. 80%를 기존 운영사인 철도공사와 공유하며, 일부만 새로운 시설을 이용하는 수서발 KTX의 민영화의 간접적인 경쟁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수익성 있는 수서발 KTX 노선을 분할 민영화하는 국토부의 논리도 궁핍하다. 합리적인 근거도 따지지 않고 철도공사의 적자와 비효율을 거론하는 주무부처의 태도는 옹졸해 보인다. 도대체 실질적인 산하 기관인 철도공사를 공격하면서까지 추진해야 할 이유가 뭔지,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철도의 영업적자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가가 부담해야 할 공공서비스부담(PSO), 시설투자 부채, 물가인상률에 미치지 못하는 요금수준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고 국제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책정된 시설이용료를 현실화 한다면 운영수지도 흑자로 전환된다. 이 기반으로 수익성이 없으나 공익을 위해 일반철도를 운영한다. 인건비도 국제 기준에 비쳐 결코 높지 않다. 오히려 공공경영평가에 따른 경영압력으로 인해 과도한 외주화를 불러와 KTX 승무원 같은 비정규직 문제나 인천공항철도 유지보수 외주인원 5명 사망과 빈번한 유지보수 미비 관련 사고 등 안전사고를 유발하고 있다. 공공 비효율의 근거로 든 사례는 기반시설 투자의 책임을 진 국가와 공공서비스를 수행해야 할 공기업의 관계가 새롭게 재정립되고 공기업의 효율성과 공공성의 조화에 대한 변화된 기준을 마련해서 해결할 과제이지, 민영화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수익성 있는 노선을 분할해 민영화하는 것은 철도의 통합적 성격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공공의 이익에 반하며, 특혜 시비를 낳는다는 점에서 비상식적이다.
김성희 고려대 경제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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