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돌풍을 일으키자 공화당이 오히려 긴장하고 있다고 미 언론이 23일(현지시간)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깅리치의 재부상이 공화당 수뇌부에게는 공황"이라고 보도했다.
공화당 수뇌부가 깅리치의 돌풍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시사주간 타임의 워싱턴 지국장인 마이클 크로울리는 "공화당은 깅리치를 (사고가 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노동자로 보고 있다"며 "깅리치는 부정적 지지율에 치명적으로 감염돼 있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에서 깅리치에 대한 호감도와 비호감도는 각각 26.5%와 58.5%로 나타나 많은 유권자가 그를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에도 깅리치를 대선주자로 지명하는 게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에서 끌어내릴 기회를 차버리는 것이라는 식의 기류가 퍼져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깅리치는 23일 밤 열린 18차 후보 토론회에서 자신이 더 이상 당의 골칫거리가 아님을 보여주려 애썼다.
공화당의 우려와 달리 깅리치 돌풍은 계속되며 남하하고 있다. 18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승리한 깅리치는 31일 경선을 앞둔 플로리다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주일 전만 해도 플로리다에서 지지율 41%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깅리치(26%)가 추격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퍼블릭 폴리시 폴링(PPP)의 조사에서 깅리치는 지지율 38%로 33%를 얻은 롬니를 2위로 밀어났다. 갤럽의 최근 전미 지지율 조사에서도 깅리치와 롬니는 각각 28%, 29%를 얻었다. 깅리치가 플로리다 경선에서 승리하면 롬니를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깅리치의 플로리다 경선 승리가 공화당에 던질 충격을 원자로의 노심융해(melt down)에 비유하기도 한다.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깅리치의 부상을 막기 위해 공화당 수뇌부가 조만간 깅리치 바람 차단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조직과 자금력에서 롬니에 뒤지는 깅리치는 슈퍼PAC(정치활동위원회) 등의 지지가 없을 경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공화당 수뇌부가 당장 깅리치에게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정치평론가 마크 핼퍼린은 "공화당 진영이 롬니에게 기대를 걸고 플로리다 경선까지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WSJ도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를 정하도록 놔두어야 한다"며 아직은 공화당 진영이 움직일 때가 아니라고 충고했다.
대세론에 상처를 입은 롬니는 이날 깅리치가 국책 모기지기관 프레디맥을 위한 불법로비로 160만달러의 컨설팅 수수료를 받았고 의원 시절 저지른 비리로 정계를 떠났다며 전에 없이 높은 수위로 깅리치를 비판했다. 롬니는 컨설팅이 합법이란 깅리치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오리처럼 걷고 오리처럼 소리 내면 결국 오리"라는 발언까지 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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