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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중국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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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중국대사관

입력
2012.01.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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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조선의 강제개항 이후 청(淸)은 조선에서의 일본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과 구미 각국의 수교를 강력히 추진했다. 아울러 임오군란 직후인 1883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을 체결, 조선을 전통적 '속방(屬邦)'에서 국제법상 '속국(屬國)'으로 바꾸려 했다. 초대 상무총판(商務總辦)으로 부임한 진수당(陳樹棠)의 첫 임무는 회현방 낙동(駱洞)의 박씨 가옥과 대지를 매입, 공서(公署)를 세우는 일이었다.

■ 진수당의 뒤를 이어 1885년 '총리교섭통상사의(總理交涉通商事宜)'로 격상돼 부임한 원세개(袁世凱)는 1894년 청일전쟁 후 귀국할 때까지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그의 영향력은 자그마했던 공서(公署)가 포도대장 이경하(李景夏)의 집을 포함해 큼직하게 바뀌었지만, 그 권원(權原)이 지금도 불분명한 데서도 드러난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차지했다가 해방 이후 중화민국(대만)이 새 대사관을 지은 이 땅은 1992년 한중 수교로 중국이 차지했다.

■ 현재의 명동 2가 땅이다. 옛 코스모스 백화점 뒤편의 이 땅에 중국대사관을 신축하는 공사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2009년 착공된 건물은 주한 외국대사관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지하2층, 지상 24층 건물은 연면적이 1만7,199㎡에 이르고, 사무실은 물론이고 52가구의 숙소와 이ㆍ미용실, 수영장과 체력 단련실 등을 고루 갖춘다. 특히 이 거대 시설을 둘러쌀 3fm 높이의 벽은 '죽의 장막'이란 먼지 쌓인 말을 되살려낼 만하다.

■ 서울의 노른자위 땅에 우뚝 설 거대 대사관은 날로 커지는 중국의 힘을 확인시킨다. 바로 옆의 화교학교나 일대에 남은 중국식당 등을 합쳐 벌써 '리틀 차이나'로 불릴 만하다. 한동안 명동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일본 관광객들의 역할이 중국 관광객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한 지 오래다. 주변 백화점들의 최대 고객도 이미 중국인들이다. 그들의 구매력과 거대 대사관이 명동 한복판에서 빚을 시너지 효과를 상상하면, 저절로 구한말 당시의 정경이 떠오른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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