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다칠려고 그래."
소속팀 코치보다 나이가 많은 금강장사 출신의 이성원(36ㆍ수원시청)이 모래판에 복귀하려고 하자 우려 섞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호기롭게 나선 첫 스파링에서 이성원은 맥없이 나가 떨어졌다. 상대는 대학생이었다. '똑' 소리와 함께 무릎이 나간 것. 지난 5년 동안 샅바를 잡지 않아서 몸 상태는 두부처럼 흐느적거렸다. 게다가 이성원은 이충엽(35) 수원시청 코치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나이와 부상의 아픔도 이성원의 복귀 의지를 꺾지 못했다. 은퇴 후 사업을 했을 때도 이성원의 머리 속은 씨름으로 가득 채워졌다. 지난해 11월 샅바를 다시 잡은 그는 21~24일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리는 2012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 복귀전을 치른다. 마지막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이성원의 씨름인생을 키워드를 통해 들여다봤다.
제1막 씨름천재, 불운의 장사
178㎝, 102㎏의 이성원은 '씨름 천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고교와 대학 시절 통합장사전을 싹쓸이해 이만기 인제대 교수의 대를 이을 재목으로 꼽혔다. 그러나 인하대를 졸업하고 LG씨름단에 입단한 그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역대 최다(14회) 한라장사 타이틀을 보유한 김용대(은퇴)에게 철저히 밀렸다. 이성원은 "대학까지는 김용대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는데 민속씨름에서는 번번이 졌다. (김)용대는 화이팅이 좋았던 반면 저는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연습 때만큼의 기량을 펼치진 못했다"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로 인해 이성원은 '불운의 장사'로 불렸다. 1품만 10차례를 기록한 이성원은 2인자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1년 한라에서 금강으로 체급을 내린 뒤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금강장사를 5번 했다. 구미시체육회에 가서 경기가 잘 풀렸다. 그러나 그 시기에 씨름이 쇠락하기 시작했다"고 덤덤히 말했다.
제2막 혼란의 시기, 설렁탕, 광우병
이성원의 씨름인생이 절정에 다다를 시기와 맞물려 모래판이 혼탁해졌다. 프로씨름단이 해체 수순을 밟았고 인기 스타 이태현과 최홍만 등이 종합격투기 진출을 선언했다. 판이 작아지면서 대회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선수들도 설 곳을 잃어갔다. 이성원은 "2006년은 혼란의 시기였다. 당시 현대씨름단에서 제의가 왔었는데 대회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들려 이만큼 했으면 됐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며 은퇴 배경을 밝혔다.
이후 이성원은 설렁탕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동안 씨름으로 벌었던 2억5,000만원을 모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전국을 강타했던 광우병 파동과 맞물려 휘청거렸다. 이성원은 "8개월 동안 한 달에 1,000만원씩 까먹었는데 정말 피눈물이 났다.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씨름이 떠올랐다. "씨름 할 때가 정말 편했구나. 씨름이 그립다."
제3막 복귀, 40, 지도자
2008년 사업이 흑자로 전환되면서 씨름에 대한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그는 "장사가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서 지도자 길을 알아봤다. 하지만 원하는 일을 찾기란 바늘 구멍과 같았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중 2011년 전국체육대회가 수원에서 열렸다. 계룡공고 출신인 이성원은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수원실내체육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고형근 수원시청 감독 눈에 띄었다. 이성원은 "감독님이 저를 아래 위로 훑어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몸 관리 잘했네. 씨름 한번 해볼 생각 없냐'고 물었다"며 "그 자리에서 두말없이 수락했다"며 복귀 과정을 털어놓았다.
2개월간 수원시청 선수단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있는 이성원은 "예전에는 심리적으로 쫓기면서 운동했지만 지금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몸이 생각처럼 안 움직여 스트레스를 받지만 하체를 보강하기 위해서 다른 선수보다 2배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실제로 이성원은 후배들보다 1시간 먼저 나와 훈련을 하고, 야간에는 아파트 15층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등 열의를 드러내고 있다. 고 감독은 "워낙 성실하고 팀에 융화가 잘 되기 때문에 후반기쯤에는 좋은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성원은 이번 설날장사 목표를 8강으로 잡았다. "감독님께 보답하기 위해서 '공짜훈련은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매달리고 있다. 그 동안 설날장사와 인연은 없지만 꼭 8강에 들어가고 싶다"며 "감독님이 마흔 살까지 운동을 하라고 하는데 올 시즌에 도전해보고 결정하려 한다. 지도자가 되기 전에 반드시 최고령 장사(현재 35세)에 오른 뒤 명예롭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수원=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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