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지음/쌤앤파커스 발행ㆍ292쪽ㆍ1만4000원
9만명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안' 혜민(惠敏ㆍ39) 스님이 그 동안 트위터에 올린 글을 모아 에세이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을 냈다. 멈추면,>
스님, 하면 으레 회색 장삼을 갖춰 입고 뒷짐을 진 근엄한 모습, 산사에서 세상과 거리를 둔 채 묵언수행을 하는 은둔자가 떠오른다. 그런데 혜민 스님은 이런 스님 상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는 일반 세속보다 더 소란한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쉬운 언어로, 사바대중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닿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트위터를 시작한 것도 '혼자서 도 닦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함께 행복해야지'라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의 면면을 알면 이런 행보가 더욱 의외다.
혜민 스님은 한국인 스님으로는 최초로 미국 대학 교수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로 영화 공부하러 유학을 떠났다가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 석사, 프린스턴대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매사추세츠주 햄프셔대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교수 스님'이다. 하버드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중 출가를 결심하고, 2000년 봄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은 뒤 조계종 스님이 됐다.
이런 이력만 보면 스님의 글은 현학적이고 관념적일 것 같지만, 정반대다. 그는 "불교가 너무 오래된 옛날 언어에 갇혀 있어서 젊은 세대와 공감하기 어렵고, 고루한 이야기처럼 들리게 된 것 같다"며 애석해 한다.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가장 쉬운 말로 불교를 이야기하는 것이 그가 글을 쓰는 목적이다.
에세이집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휴식 관계 미래 인생 사랑 수행 열정 종교 등 총 8개의 테마로 나눠 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다른 종교서처럼 뜬구름 잡는 식의 설법을 늘어놓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해결책을 조목조목 내놓는다.
연애를 고민하는 청춘에게는 시쳇말로 '밀당'(밀고 당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아 괴로워하는 이들에게는 '누가 나를 싫어하면,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세요. 나도 모두를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스님답지 않은 조언을 내놓는 식이다.
책을 덮고 나면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은 모노드라마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스님은 '끝없이 분투하면서 살아가는 삶'에 염증을 느껴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다고 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끝없는 분투'가 얼마나 쓸모없는 자아고갈 행위인지 설득해 나간다.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이런 아비규환 속에 서서 그 따위 하찮은 고민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는지 헛웃음이 난다.
"삶의 지혜란 굳이 내가 무언가를 많이 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편안한 멈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는 스님의 조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