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것은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던 2억원의 대가성을 인정하면서도, 곽 교육감이 측근들의 대가 합의 사실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고, 그가 경제적 곤궁에 빠진 박명기 교수를 돕기 위해 돈을 준 측면이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선고를 앞두고 곽 교육감에 대해 벌금형이 내려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죄를 주장하는 쪽과 더불어, 곽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준 2억원에 대가성이 인정된다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선거사범에 엄격하게 법을 적용해오던 법원의 최근 경향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었다. 돈을 주기로 합의한 사실을 몰랐다는 점, 돈을 준 동기가 선의에 의한 부조였다는 점 등 곽 교육감의 주장을 고려하더라도 집행유예 이하의 판결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재판부는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건넨 2억원에는 후보 사퇴 행위와 대가관계가 있어 유죄로 인정된다"면서도 법적으로 가장 낮은 처벌 단계인 벌금형을 선택했다. 재판부는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박 교수 측의 선거비용 보전 명목 금전 지급 요구와 주변의 지급 의견을 일관되게 거절한 점 ▦뒤늦게 당시의 금전 지급 합의를 파악한 후에도 박교수의 이행 요구를 한 차례 거절했고, 이후 박 교수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합의에 관여한 측근들을 배제한 점 ▦경제적 곤궁 상태에 빠진 박 교수를 도와주라는 강경선 교수의 말이 돈 지급 결정에 영향을 준 점 등을 양형 이유로 밝혔다.
결국 재판부의 판단은 박명기 교수의 사퇴 행위에 대한 '사후 대가'라는 상황의 특성을 고려한 결정이다. 즉 곽 교육감이 나중에라도 합의 사실을 알았다면 다른 이유로 돈을 줬다고 하더라도 대가성을 인식한 것으로 봐야 하지만, 그가 박 교수의 사퇴 대가로만 돈을 지급했다고는 보기 힘들기 때문에 엄한 처벌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대가성은 곽 교육감이 과연 사퇴 대가로 돈을 줬느냐는 동기의 문제가 아니라 박 교수가 대가를 바랐고, 결국 이를 받아냈다는 점에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판단이 돈을 받은 박 교수에게는 징역 3년의 중형을 선고한 반면, 곽 교육감에게는 벌금형을 선고한 이유가 됐다.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 과정 당시부터 금전 지급 약속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후보 사퇴 대가로 돈을 준 것이라고 주장한 검찰이 이를 입증하는 데 실패한 것도 재판부의 판단에 한몫을 했다. 검찰은 곽 교육감을 기소하면서 '양 후보의 측근들이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7억원을 주기로 합의안을 도출한 후 곽노현에게 직접 보고해 최종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사에게 입증 책임이 있지만, 정황사실과 공소사실의 연결상태가 긴밀하지 못하는 등 직접 증거가 전혀 없다"며 "(곽 교육감은) 오히려 합의에 나선 측근들의 의도된 행동 때문에 박명기가 조건 없이 사퇴했다고 알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이라고 일축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법적으로 상당히 안정적인 판단'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미 사퇴한 공직 후보에게 추후에 대가를 지급하더라도 처벌이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법적인 안정성은 유지하면서도, 선의의 부조라는 곽 교육감의 주장도 일정 부분 받아들인 재판부의 고뇌가 충분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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