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문제가 또 다시 선거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책의 순환주기로 보면 이번에는 보호와 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이 득세할 시기이다. 비정규직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한 김대중 정부 때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당선되었고 5년 후 이명박 정부는 비정규직 규제를 대폭 풀겠다며 취임했다. 이제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앞 다퉈 비정규직의 보호와 규제 강화를 약속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 변화가 꼭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비정규직이 30만 명 이상 증가한데다 홍익대 청소용역분쟁이나 현대차 사내하청분규가 이슈화되면서 여론의 풍향이 바뀐 탓도 크다.
비정규직 보호대책에 관한 한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별로 배울 것이 없다. 지난 10년간 많은 사회적 논의를 거쳤고 최대공약수를 모아 법도 만들고 여러 가지 정책도 시행한 풍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비정규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계가 주장하듯이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아서 또는 재계가 바라는 대로 비정규직 규제를 모두 철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스페인처럼 정부가 정규직전환 지원금을 제공하는 방안이나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까지 올리겠다는 주장도 문제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의지와 구호를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전문가의 책무이지만 불행하게도 비정규직 문제는 전문가들 사이에 가장 큰 의견 차이를 보이며 갈등하는 이슈였다. 그런데 최근 이들 사이에 비정규직문제를 고용의 질적 악화문제로 보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나 고용의 질적 악화가 비정규직 문제로 응축되어 표현될 뿐이라는 인식이다. 즉 비정규직 고용형태 그 자체가 아니라 싸구려 일자리로서의 비정규직 또는 비정규직 같은 싸구려 일자리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단일한 해법이 아니라 고용의 품질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이 더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법이 아니라 정책으로 풀 수 있는 여러 대책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다.
첫째, 2년 이상 계속되는 직무에 대해서는 무기계약을 원칙으로 하는 방안이다. 퇴직금이나 각종 수당의 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하나의 일자리에 10개월 단위로 고용계약을 반복 갱신하는 공공부문의 고용관행은 개선돼야 한다. 공공부문은 기간제한의 본래 취지에 맞게 이를 직무기준으로 운용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이러한 일자리의 직무표준과 직무임금 기준을 만드는 것도 좋은 비정규직 대책이 된다.
둘째, 근로기준법과 4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축소하기 위한 종합대책의 강구이다. 근로기준과 사회보험의 적용 여부는 일자리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다. 아무리 정규직으로 분류되더라도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는 일자리가 증가하는 최근의 추세를 돌려놓아야 한다. 많은 영세사업장의 근로자가 그렇고 지난 10년간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돌봄노동과 대다수의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그렇다. 이 경우에는 이들을 법과 사회보장의 틀 속에 넣는 것과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품질기준을 만들어 이 분야 종사자들의 근로조건을 체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서비스의 개선과 생산성의 향상이 가능하고 유망한 미래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용역이나 파견근로 그리고 사내하청과 같은 간접고용의 확산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출제조업에 한정됐던 사내하도급이 최근 병원과 호텔 그리고 공공부문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차별시정제도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불법파견에 대한 근로기준 행정의 강화와 산업안전이나 임금보장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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