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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음식 - 추억이 가래떡처럼… 문화계 인사 6인의 '나와 설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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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음식 - 추억이 가래떡처럼… 문화계 인사 6인의 '나와 설 음식'

입력
2012.01.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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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하늘 아래 호흡하고 있지만 설을 맞는 마음은 한결같지 않다. 저마다 다른 사연과 추억을 껴안고 살아가기 때문일 터. 문화예술인 6명에게서 설과 설음식에 관한 추억을 들어봤다. 방앗간에서 길게 뽑혀 나오는 가래떡처럼 설과 음식, 고향과 어머니 이야기가 줄줄이 따라 나온다. 슬쩍 들춰낸 추억 한 자락에 마음이 괜스레 뭉클해진다.

◆안동림 (80ㆍ전 청주대 교수, 클래식음악평론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열 아홉 청년은 고향인 평양을 홀로 떠나왔다. 전쟁 통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황망해하던 어머니와 동생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곧 미군과 국군이 북진한단 얘기가 돌았거든요. 금방 만날 줄 알았지. 울면서 헤어진 것도 아니고 평소처럼 '갔다 올게'라는 말밖에 못 했어." 노교수 목소리에 회한이 어렸다. 친지, 친구 하나 없이 월남했기에 설엔 집에서 가족과 소박하게 떡국 한 그릇 끓여 먹는 게 전부라고.

반세기 이상 남쪽에 살아 이젠 기억도 희미하다지만 혀끝은 여전히 고향을 찾는다. "설에는 떡국이 아닌 만둣국을 먹었어요. 어머니가 손수 빚은 만두를 기름 걷어낸 맑은 소고깃국에 끓여 먹는데 참 맛있었지. 평양에선 만둣국이랑 밥을 꼭 같이 먹거든. 서울 사람들은 그렇게 나오면 만두를 다 건져 먹고 밥을 말아 먹는데, 밥을 넣고 만두를 쪼개 같이 한 숟가락에 떠먹으면 그 맛이 아주 절묘해요."

녹두지짐이를 돼지기름에 바삭하게 부쳐먹고, 설 즈음에도 차디찬 물냉면을 훌훌 말아먹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는 요즘도 고향 맛이 그리울 때면 집 근처 3대째 운영하는 평양 만두 전문점을 찾아 향수를 달랜다고 한다.

◆이해인 (67ㆍ수녀, 시인)

투병 중이지만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의 목소리에서 그런 기색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설 음식에 얽힌 추억을 묻자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단번에 '떡국'을 떠올렸다. 수녀원에서 떡국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일 년에 단 두 번, 신정과 구정뿐이란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없으니 여기 계신 수녀님 대부분 떡국을 좋아하세요. 두 번의 설날이 오면 언제 떡국이 나오는지 아침부터 주방에 물어보시죠.(웃음)"

하지만 그가 떡국을 좋아하는 것은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이다. 종전 후 어렵던 시절, 아홉 살에 혜화동 성당에서 첫 영성체를 받던 날이었다. "그때가 크리스마스였어요. 영성체 받느라 하얀 옷을 입고 추워서 부들부들 떨었어요. 떡국을 받아 들고 성당에서 먹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때부터 떡국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가래떡도 좋아해 냉동실에 저장했다가 종종 구워 김에 싸먹기도 한다고. 최근엔 그 사실을 아는 한 독자가 수녀원으로 가래떡을 보내오기도 했다. "색깔 화려하고 뭐가 많이 들어간 무지개 떡이나 콩떡보다 담백한 가래떡이 맛있어요. 그런데 수도 생활과 맞물려 생각해보면 깨끗하고 순결한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장사익 (63ㆍ소리꾼)

"촌놈한테 설날은 특별한 날이지. 떡국 먹고 새 옷 입는 날이었으니께." 어렵던 시절, 일 년에 한번 사는 새 옷, 막 공장에서 나온 것 같은 그 냄새가 어린 그에겐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단다. 게다가 한번에 세 그릇씩 비울 만큼 좋아하는 떡국을 실컷 먹는 날 아니던가.

"어릴 때 입맛 때문인지 퉁퉁 불은 떡국을 좋아혀유. 차례 끝나면 떡국이 퉁퉁 불잖유. 그게 그렇게 구수하고 맛있을 수가 없어." 성묘와 동네 어르신들 세배까지 다녀오면 불을 대로 불어 아예 무쇠솥에 딱 달라붙은 떡국까지 닥닥 긁어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맛이 바로 어머니 손맛이었다. 2002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론 불은 떡국 맛도 예전 같지 않더란다.

"설 전에 부모님 제사가 열흘 간격으로 있어 늘 부모님 생각이 나유. 어머니 제사, 아버지 제사 그리고 설인데, 어머니 제사를 제대로 지내고 아버지는 산소에 가서 약식으로 지내지. 묘하게, 생전 어머니 생신은 아버지 생신 사흘 후라 어영부영 지나갔는데, 제사는 그 반대란 말여. 생전에 제대로 못 챙겼으니 지금이라도 잘 챙기라는 아버지의 배려일까. 이젠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됐고, 아들이 나를 닮아가고, 이 즈음되면 여러 생각이 나유."

◆웅산 (39ㆍ재즈 보컬리스트)

설날 하면 두 가지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한다. 웅산이란 법명을 받은 충북 단양 구인사에서 절을 찾는 불자나 손님을 위해 떡국을 만들었던 기억과 지난해 8년 만에 가족들과 고향에서 맞은 설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출가한 뒤 절에서 맞은 설은 늘 음식 장만으로 분주했어요. 절집 생활이 워낙 자급자족에 익숙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막내였던 제 손도 많이 바빴어요. 스님이 방앗간에서 뽑아오신 가래떡과 고명으로 얹을 김치를 써느라 정신없었던 기억밖에 없네요."

재즈보컬로 국내와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후엔 제대로 설을 지내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최근 10여년간 설엔 늘 일본에 있었다. 양력설을 쇠는 일본에선 그의 콘서트 스케줄이 늘 이맘때 잡혔기 때문이다. 고향이 경북 문경이어서 설 전에 잠깐 들렀다 가기도 쉽지 않았다고.

지난해 고향에서 보낸 설은 그래서 더 특별했다. "작년 설은 엄마가 큰 수술 받고 회복하면서 맞은 첫 설이었어요.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 스케줄도 빼고 달려갔죠. 새해가 되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며 걱정했는데, 그런 일 겪고 부모님과 1남 5녀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무사히 맞은 새해가 얼마나 감사했나 몰라요. 소박하지만 소중한 기억이죠."

◆전제덕 (38ㆍ하모니카 연주자)

"엄마는 김치만두를 기가 막히게 잘 빚으셨어요. 설만 되면 그 기억이 가장 많이 나죠." 만두는 맛있었지만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웠다고 한다. 명절 때면 경기 여주의 큰댁에 모이는 사람은 많아도 주방에서 음식 준비하는 사람은 큰어머니와 어머니 둘뿐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인 그가 기숙생활하던 인천 혜광학교에 들러 함께 큰댁으로 갔는데, 혼자 애쓰셨을 큰어머니한테 미안했던지, 그 캄캄한 밤에 또 만두를 빚곤 하셨단다.

"일을 직접 도와드리지 못하니, 설 전날 음식 장만이 끝나면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 드렸죠. 나이가 들어서는 술 한잔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가끔 엄마는 이때 족발과 도토리묵을 해주셨는데, 이 맛 또한 잊을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한번도 족발을 사 먹지 않았어요. 엄마 계실 땐 엄마 족발이 제일 맛있었고, 지금은 안 계시니 먹지 않지요."

2007년은 그에게 만감이 교차하는 해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결혼을 했고, 이듬해 아들이 태어났다. "아버지와 동생은 그래요. 다른 때도 엄마가 그립지만 설이면 엄마의 만두가 너무 그립다고요. 그동안 만두를 사먹는데, 아버지께서 올해 설부터는 가끔이라도 엄마가 잘 만드시던 김치만두를 빚어보자고 하시네요."

◆하성란(45ㆍ소설가)

"초등학생 때였으니까 1970년대 후반쯤이겠네요.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명절음식은 외숙모와 엄마보다 나이 어린 이모들이 준비했는데 가끔 엿을 고아 보내주시곤 했어요."

그의 외가는 충남 홍성. 거리가 먼 거제도의 친가보다 명절이면 더 자주 찾던 곳이다. 혹여 설날 외가를 가지 못하면 이모들이 엿과 다식을 한 바구니 만들어 보냈다. 그럴 때면 그는 동생들과 엿치기를 하며 놀았다. 엿을 쪼개자마자 입으로 훅 불어 구멍이 제일 큰 사람이 이기는 놀이였는데, 어린 시절의 설날 하면 그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고.

"설날 이모들이 옥수수엿을 만들다 실패한 걸 본 적이 있어요. 고아낸 엿물을 뜨거운 방안에서 두 사람이 잡고 늘려서 가늘고 하얀 막대 모양으로 엿을 만들어요. 그런데 엿물을 잘못 끓이면 걸쭉하지 않고 물처럼 풀어지는데 그럼 조청으로도 못 쓰거든요. 실패했을 때 이모들의 난처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다식 맛은 어른이 된 후에야 알게 됐단다. "이제야 그 맛을 알았는데, 외가에서 다식을 만드는 분이 없네요. 다식판이라도 있으면 제가 갖고 싶은데 할아버지도 안 계시고 어디에 두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이모들이 다 살아 계신데 그때 얘기하면 다들 아쉬워하세요."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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