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감생심(焉敢生心). 좁은 땅덩이 꽉 막힌 길에 천만 단위로 인구가 들썩이는 이 때, 가족 나들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을 가로막는 네 글자다. 그래도 오랜만에 식구들이 한데 모였는데 TV 리모컨이나 화투장만 문지르기엔 섭섭한 명절. 먼 길 나설 엄두가 안 난다면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관광공사가 설 연휴에 가볼 만한 곳으로 대도시 구석구석 숨어 있는 정겨운 풍경 일곱 가지를 꼽았다. 가까이 살면서도 일부러 찾아볼 짬이 없었던 이웃 골목, 모처럼 찾은 친척댁 주변의 볼거리들이다. 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이트(www.visitkorea.or.kr)에 자세한 정보가 있다.
예술로 탈바꿈한 시장, 대구 방천시장
방천시장은 한때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 3대 시장으로 손꼽혔던 곳. 쇠락해가던 이곳은 2009년 점포에 문화예술을 접목하는 예술 프로젝트 '별의별 별시장'을 시작하면서부터 활기를 되찾았다. 오래된 벽과 간판, 기둥이 아기자기한 예술품으로 변하면서 대구를 찾아온 여행객들이 꼭 거쳐 가는 명소가 됐다. 시장 한쪽 신천대로 둑길에 100m 남짓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엔 김광석의 얼굴과 노래 가사 등을 주제로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청라언덕, 계산성당, 이상화 고택을 지나 진골목에 이르는 2㎞의 골목 여행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대구 중구청 문화관광과 (053)661-2191.
근대와 미래의 살가운 포옹, 인천
인천의 도시 나들이는 미래의 모습과 옛 기억을 나란히 체험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우선 송도국제도시에서 즐기는 미래. 한복판 센트럴파크는 국내 최초의 해수공원으로 수로 주변에 감각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건물이 빼곡히 도열해 있다. 사발 모양의 트라이볼, 고대에서 미래로 시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컴팩 스마트시티 등이 볼 만하다. 반면 '원조 송도'인 송도유원지에는 인천의 과거가 깃든 시립박물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1960~70년대 풍광을 간직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차이나타운, 배다리 전통거리 등도 빼놓기 아깝다. 인천종합관광안내소 (032)832-3031.
근대사의 보고, 광주 무등산과 양림동
광주 나들이의 중심엔 무등산이 있다. 많은 경승을 품은 무등산 코스 가운데 겨울산의 정취와 역사의 향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이 증심사 코스다. 9세기 창건됐다는 고찰엔 조선의 건축물인 오백전, 보물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 등이 있다. 절 왼편 산자락엔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1891~1977)이 춘설차를 재배하던 차밭(삼애다원)이 펼쳐져 있다. 절 아래 문향정에서 춘설차의 청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시내 양림동은 100여년 전 광주 최초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곳으로 기독교 문화유산 등 근대 문물이 남아 있다. 광주광역시 관광진흥과 (062)613-3622.
묵은 골목이 자아내는 온기, 서울 세종마을
세종마을은 흔히 서촌으로 불리는 종로구 효자ㆍ통인ㆍ필운ㆍ체부ㆍ옥인ㆍ누상동 등 15개 법정동에 종로구가 붙인 새 이름이다. 동서로는 경복궁 서쪽 담장에서 인왕산길까지, 남북으로는 사직단에서 청운아파트 터에 들어선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를 경계로 한 동네다. 이 동네 나들잇길에선 묵은 이야기와 젊은 예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겸재 정선의 산수화 '인왕제색도'의 풍광을 배경으로 박노수가옥, 이상범가옥, 시인 이상의 옛집 등이 독특한 갤러리와 예쁜 카페들 사이에 섞여 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과 통인시장도 빈티지 여행의 세계로 인도한다. 종로구청 관광산업과 (02)2148-1853.
과학으로 꿈꾸는 도시, 대전 유성구
많은 관광자원을 가진 대전이지만, 여행객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과학 관련 학습 및 전시 장소들이다. 전국 각지의 동식물ㆍ지질ㆍ광물ㆍ천연보호구역 등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천연기념물센터, 다양한 과학 체험을 할 수 있는 국립중앙과학관, 겨울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할 수 있는 대전시민천문대 등이 그것이다.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법으로 죄인을 심판하는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는 솔로몬 파크 등도 들러볼 만하다. 천연기념물센터 (042)610-7610.
새해 소원을 빌게 되는 곳, 울산 간절곶
연말 해넘이와 해돋이를 못 봐 아쉽다면 울산 남부의 진하해수욕장으로 가자. 겨울철 일출이 특히 아름답다. 가까이 있는 간절곶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곳이다. 울산시장과 울주군수, 그 밖의 이런저런 이들이 경쟁적으로 기념물을 설치해 자연스러운 풍광을 망친 것이 흠이라면 흠. 거대한 소망우체통도 있다. 새해를 맞아 흑룡 기념물도 들어섰다. 하지만 昞?등대의 고즈넉함과 파도가 부딪치는 바위 언덕의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울주군청 문화관광과 (052)229-7641.
뜨거운 찜질과 온천, 광안리ㆍ해운대ㆍ동래
부산엔 명절 치르느라 뻐근해진 어깻죽지를 풀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이 있다. 광안대교의 빼어난 야경을 바라보면서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몸을 지질 수 있는 호메르스호텔 찜질방, 해운대 신시가지의 스파랜드 등 명절증후군을 날려버릴 수 있는 곳들이다. 연로한 부모와 함께라면 신경통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동래 허심청 온천욕을 추천한다. 찜질로 피로를 푼 다음엔 이기대 해안 산책로나 해운대 달맞이길을 걸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을 수 있다. 부산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51)888-3512.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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