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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누가 함부로 이름을 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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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누가 함부로 이름을 붙이나

입력
2012.01.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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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 선거 때 마다 정치권에서는 젊은 세대의 민심을 잡기 위한 대책이 앞 다퉈 나온다. 이렇게 주목을 받는 2030세대는 어떤 세대일까.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다.

'2030세대는 전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5060세대와 달리 경제적 혜택을 누리며 자랐다. 2030세대는 관습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와 행동 양식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진보적으로 행동하며 삶의 질과 자아실현에 대한 관심이 높다.'

2030세대에게는 스스로도 체감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름들이 있다. '3포세대', '이태백', '프리터', 'NEET족' 등. 그렇데 이 이름들은 누가 붙여준 것일까. 누가 정의하고 분류했을까. 관습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그래서 책임감이 별로 없는 세대가 순식간에 정치적 화두가 됐다. 정치권에서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하게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그리고 그다지 지역적 기반을 따지지 않는 다는 인식을 했다.

어떻게 해야 2030 세대의 표를 얻을 수 있는가. 고민하던 정치판에서 선택한 것이 겁주기와 다독거리기다. 경제 불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서 비관론이 확산되고 모두의 의욕이 낮아졌다.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보다 많아 진 것이다. 이런 비관들 속에서 2030세대에게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바로 3포 세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2030세대는 끊임없이 울려대는 비상경보와 싸우고 있다. 경제위기, 외환위기,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상승, 취업.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는 경제는 한 번도 호기를 '체감'할 수 없다. 지금 청년들에게 가난은 문제 삼을 수조차 없는 상투적인 것이 되었다. 총선이 다가온다. 2030 세대를 분류하는 또 다른 이름이 탄생할 것이다. 이런 이름은 곧 2030세대의 위기론으로 확산될 것이고 곧 그에 대한 대책으로 각종 공략이 나올 것이다. 속지말자.

이명박 정권과 함께 지낸 4년, 우리의 사유는 경제위기라는 마취제로 마비되었다. 마취제를 퍼트리는 주사기가 언론이다. 언론에서는 아주 원색적으로 2030세대에게 별명을 지어주고 있다. 떡볶이 하나로 몇 백억원을 벌고, 20만원 고시원에서 수십억대 부자가 된 사람들의 자극적인 사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청년의 가난은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선관위 해킹 사건과 돈봉투 사건 등 상식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1주일이 멀다하고 벌어지는데, 청년들의 시선은 늘 다른 곳으로 가있다.

2030세대를 겨냥한 각종 위기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증폭되고 과장되고, 불안하게 한다. 현 정권의 선택으로 지난 4년간 4대강이 다 틀어 막히고, 광화문 사거리에 컨테이너 성 앞에서 물대포를 맞은 일로 달게 벌을 받았다. 하지만 그 선택은 누가 했는가? 바로 우리다. 이명박 대통령은 위기를 앞 세워 눈과 귀를 막은 상태로 그야말로 우리를 공략했다.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것이다. 2030세대청춘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편의점에 갇혀있다. 선거를 앞둔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각종 별명을 붙이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경제위기' 속에 태어난 '변종'으로 규정당하고 있다. 매체들은 쉼 없이 2030세대에게 그 위기에 대해서 보도한다. 하지만 IMF를 맞아들인 사람이 누구인가.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들고 한 끼 밥값도 안되는 시급으로 부려먹는 사람이 누구인가. 왜 저지른 사람은 배부르게 살고 있고, 지켜보기만 했던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할까.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탓으로 돌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들여다봐야 된다. 우리는 이제 몰려다니기보다 결정해야 하고 연대해야할 것이다. 못된 어른들이 달아주는 우리의 이름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치고 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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