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바보인지 누가 불공정한지…눈 먼 세상에 '황만근'이 그리운 이유
성석제의 소설을 읽다 보면 '혹시 조선시대 전기수(傳奇叟)가 환생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1970, 80년대 지식인의 열정도, 바보 농부의 애잔한 생애도, 영웅의 비장한 죽음도 이 작가의 입담을 거치면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가 되고 만다. 작가는 언제나 심드렁한 듯 이야기를 시작해서 천연덕스럽게 허풍을 떨다가 한 자락 페이소스를 남기며 이야기를 마친다. 농담과 해학과 사투리로 무장한 그의 소설은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진중하지만 심각하지 않다.
단편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성석제표 소설의 특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작가의 고향인 경북 상주와 한때 작업실이 있었던 경기 이천, 두 곳을 배경으로 쓴 소설은 바보 농부 황만근과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우리 농촌의 현실을 되돌아본다. 2000년 문예지 <동서문학> 에 발표돼 이듬해 동인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그의 대표작이 됐다. 동서문학>
이 작품은 올해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렸다. 그 소감을 물어보자 작가는 대뜸 "글쎄, 별로 교훈적인 내용이 없을 텐데…"라며 농을 던진다. "아들이 수능 모의고사 볼 때 제 소설이 언어영역 지문으로 나온 적이 있었대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답 몇 번이냐고 물어봐서 자기도 모른다고 대답했다던데, 저도 그 시험지 봤는데 답을 모르겠데요."
역시, 성석제다.
이야기의 원천, 상주
"상주는 전통적으로 부농이 많은 곳이에요. 곶감은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오이, 꿀도 전국 생산량 1위죠. 고기를 얻으려고 키우는 닭 있죠? 육계. 육계도 전국 생산량 1위고요, 한우 산출량은 2위예요. 워낙 농사를 많이 지어서 '농사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이죠. 안동이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불리는 것처럼."
상주로 향하는 자동차 안. 작가는 상주의 어원과 위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그가 자란 동네와 상주 친인척들의 계보, '황만근…'을 쓴 오태저수지 근처의 일화들을 쏟아냈다. 종종 독자와 문단 지인들과 상주를 여행했던 만큼 그곳에 살아봤다고 다 아는 게 아는 것들까지 얘깃거리를 풍부했다. 그는 준비된 안내 멘트를 하나하나 풀어놓으며 상주의 역사와 특산물과 맛집들을 소개했다. 소설가가 아니라 상주 관광 안내원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성석제 소설의 팬들은 이 작가의 입담의 원천이 고향인 상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꽤 많은 인터뷰와 기고에서 "내 소설의 절반은 상주를 배경으로 썼다"고 했을 만큼 그곳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남다르다. 한데 50대인 작가가 실제 상주에 살았던 기간은 얼마나 될까. 작가는 "13년 8개월"이라고 했다. "그래도 중 3때 연합고사 본 이후부터 방학마다 상주에 내려왔다"고 덧붙이면서. "고등학교 입시 준비 때 빼고, 군대 3년 빼고…"라고 얼버무리면서.
'황만근…'의 배경은 상주, 하고도 공검면에 있는 오태저수지다. 그의 고향인 낙양동과는 30~40km 떨어져 있다. 그는 "원래 공검지라고 불리던 곳인데 해방 후에 저수지가 얕아져서 그 상류에 골짜기를 막아 저수지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경북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란다.
작가가 이곳을 찾은 건 1995년 무렵. 직장을 그만두고 저수지에 관한 소설을 구상하러 오태저수지 근처 마을인 오태1리에 전세를 들었고, 그곳에서 첫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를 썼다. 당시 전세금은 1년에 쌀 두 말. 마을 이장의 판공비(작가는 이를 '이장조(里長稠)'라고 불렀다)로 각 가구마다 쌀 한 말씩을 거두는 관례를 따라 그도 쌀을 냈다. 도합 쌀 세 말. 왕을>
오태1리는 전주이씨 효령대군파의 집성촌이다. 당시 이곳에서 외지인은 작가인 성석제와 이 마을로 장가온 동명이인 성석제씨, 단 둘이었다고. 작가는 "몇 달 지내는 동안 동네사람들과 티격태격하고 좀 혼나기도 하고, 잘 놀기도 했다. 몇 년 전 찾아갔을 때 세 들었던 그 집은 허물어 없어졌더라"고 말했다. 30~40가구가 사는 단출한 마을에서, 40대 이장이 가장 젊은 일꾼인 시골에서, 30대 중반의 새파란 놈이 작가랍시고 눌러 앉아 놀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에서 손님 데려와 먹고 마시고 북적대니 작가 말마따나 "아니꼽게 볼" 수도 있었을 터.
작가는 "이 마을에서 겪은 일 중 상당부분을 소설로 썼는데 아직 못 쓴 이야기도 많다"고 했다. '황만근…'을 비롯해 '본래면목' '낚다 섞다 낚이다 엮이다' 등도 이 마을과 저수지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을 제공한 또 다른 곳은 경기 이천. 96년 장편 <왕을 찾아서> 를 낸 뒤 이곳에 자그마한 작업실을 지어 1년여간 살았다. "그 마을은 또 왕씨 집성촌이었어요. 이씨와 철천지 원수인 동네였죠.(웃음) 집성촌이 배타적이면서도 한번 섞이면 즐거운 일이 많은 동네예요. 어울리고 친해지면 왕래도 잦고 뭘 자꾸 갖다 줘요. 그래도 외지인은 특별취급하고 상당부분 견제하는데, 결국 동화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왕을>
성석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이야기는 단편 '황만근…'에서는 이렇게 바뀐다. '신대 1리는 황씨들이 오십여 호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2년 전에 귀농한 민씨 같은 타성바지는 황씨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노씨를 포함 전체에서 두 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15쪽) 황만근은>
"경북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오태저수지는 소설에서 '전국에서 다섯 번째 깊이라는 천곡저수지'(16쪽)로 바뀌었다. 역시 오태저수지처럼 소설 속 천곡저수지도 '6ㆍ25후에 계곡 입구를 막아 저수지를 완공했'(17쪽)다.
소설은 바보 농부 황만근이 사라진 뒤 마을 사람들의 말을 통해 황만근과 농촌사회 면면을 되돌아본다. 새벽에 혼자 경운기를 타고 집을 나간 황만근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마을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만그인지 반그인지 그 바보자석 하나 따문에 소 여물도 못하러 가고 이기 뭐라."(8쪽)
15세에 팔려온 모친에게서 팔삭둥이 유복자로 태어난 황만근은 '돼지고기 반 근 만'한 외모에 '십원'을 '찝원'으로 발음하는 어눌한 말투 때문에 바보로 취급 받으면서도, 똥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만들고, 공동분뇨를 처리하는 등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낸다.
사람들로부터 바보로 취급 받았지만, 황만근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머니를 끔찍이 봉양하는 효자이자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였고, 누구보다 공평하게 일을 처리했다.
'마을에서 젊은 축에 드는 마흔다섯 살의 황영석은 황만근이 벽돌을 찍고 구덩이를 파서 지은 마을회관 변소에서 분뇨를 퍼내면서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만그이 자석이 있었으마 내가 돈을 백만원 준다 캐도 이런 일을 안할 낀데."'
'"만그이한테 물어보자."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다가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공평무사한 것이 황만근의 평생의 처사였다. (…) 물어보나마나 명약관화 한 일을 두고도 황만근을 들먹였다. "만그이도 알 끼다."'
'"만그이가 있었으모 저 거름이 우리 밭으로 올 낀데. 만그이가 도대체 어데갔노." 마을회관 곁 조그마한 밭에 채소를 심어먹는 여씨 노인도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15~16쪽)
마을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증언과 추측, 소문이 취합된 결과, 만근은 '농가부채 탕감 촉구 전국농민 총궐기 대회'에 참가했다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진다. 느려터진 고물경운기를 몰고 100리 길을 달려갔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 대회는 이미 끝이 나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어두운 국도를 타고 집으로 오던 중, 경운기가 길옆으로 굴러 망가지는 바람에 앉은 채로 밤을 새우다 추위와 졸음으로 숨을 거두고 만 것.
작가는 "황만근은 특별한 인물이라기보다 시골 동네에 하나씩 있었던 바보처럼 순한 농사꾼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농촌에는 좀 열등해 보이는 사람도 어울려 같이 사는 전통이 있잖아요. 어릴 때 우리 동네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고요. 한데 꼭 그런 사람은 동네 한 귀퉁이 허름한 데서 살았어요."
그래서 소설에서는 황만근의 집이 이렇게 묘사된다. '황만근은 나면서부터 물가의 제일 바깥쪽 동네, 곧 신대 1리에서도 제일 바깥의 마을 어귀에 살고 있다. 동네를 집에 비유하면 황만근의 집은 행랑채에 해당한다. 행랑채가 그렇듯 동네의 다른 집에 비해 황만근의 집은 작고 보잘것없다.' (17쪽)
반그이, 아니 만그이 … 사투리 효과
성석제의 입담을 빛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사투리다. 그는 상주 사투리는 물론이고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사투리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물론 작품 속에서. 작가는 "경상도 사투리도 다 같은 사투리가 아니"며 "경북, 경남 지역별로 스펙트럼이 있다"고 말했다. 작가의 주관으로 판단컨대, 경북보다는 경남 사투리가 억양이 더 세고, 특히 경남 서부지역은 전국 최강이란다. 억양이 세면 목소리도 더 크게 들린다. 작가는 "(현지 사람들은) 경남, 경북 사투리를 거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할 정도"라고 말했지만, 감각 둔한 대구 출신 기자의 귀에는 경북 사투리나 경남 사투리나 한끗 차이로 들린다.
"예를 들자면 상주 사람들은 누나를 '누나' 혹은 '누야'라고 불러요. 남쪽에서는 '누부'라고 부르죠. 말투도 다르지만 쓰는 어휘도 다르죠. 그리고 경남 사람들은 어른한테 은근히 반말을 써요. 자기들은 '다 구분된다'고 하지만, 되기는 뭐가… 경남 친구들한테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면 맨날 그냥 얼버무려.(웃음)"
'황만근…' 속 인물들은 상주 사투리를 쓴다. 짧고 반복이 많은 말투 때문인지 사투리가 들어간 대목은 읽는 사람이 저절로 리듬을 타게 만든다.
'반그이, 아이다, 만그이가 여게서 나서 사는 동안 한분도 밖에서 안 들어온 적이 없는데 말이라./ 아이지요, 어르신. 가가 군대간다 캤을 때 여운지 토깨인지하고 밤새도록 싸우니라고 하루는 안 들어왔심다. (…) 반그이는 돼지고기 반근만해서 그런지 안 보인다칸께.'(9쪽)
"사투리가 캐릭터의 많은 부분을 결정해요. 그 말을 쓰는 사람을 표상하는 강력한 신호죠. 인물 성격뿐만 아니라 작가인 제 자신이 가진 가치관, 말하자면 중앙 대 지방에 대한 생각과 출신성분 같은 많은 부분을 드러내요."
소설에서 '교양 있는 현대 서울말'을 구사하는 건 외지에서 온 귀농인 민씨, 민정순 하나인데, 황만근을 바보가 아니라 우직한 농사꾼으로 생각한 유일한 인물이다. '바보 자석'이 자리를 비운 새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러저러한 말들을 모아, 민씨는 황만근의 묘비명을 쓴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40쪽)
죽어버린 황만근은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혀 짧은 황만근이 평생 할 수 있는 얘기보다도 더 많은 말이 쏟아진 셈이다. 작가는 "문학을 통해 전형을 보여주기보다 패턴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의 가치관을 말하기보다 상황을 제시하고 독자에게 물음을 던지고 싶다고. "독자가 작품 속 인물을 보고 참고할 만한 전형을 발견하게 된다면 제 몫을 한 것이겠지요. 전 그게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주=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 성석제의 상주 맛 예찬
"하, 올해는 흉작이라더니 진짜 하나도 없네…."
오태리에 도착하자마자 성석제씨가 찾은 것은 '상주 곶감'이었다. 전국 생산량의 80%를 자랑한다던 상주 곶감이 올해는 흉작이라 양이 적을 거라고, 서울에서 출발하는 차 안에서부터 그는 걱정 반, 자랑 반으로 상주 곶감부터 온갖 음식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몇 권의 음식 에세이집을 낼 정도로 예민한 미각과 탁월한 글발을 자랑하는 그는 곶감을 에피타이저 삼아, 줄곧 점찍어 둔 상주 음식점을 소개했다. "상주 음식은 인위적으로 손을 대서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고요, 식당에 가도 집에서 먹던 대로 음식을 냅니다. 대표적인 음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스타일이죠. 그리고 간장이 상당히 맛있습니다."
입이 짧아 맛집만 다닌다는 그는 서울 아파트에서 장을 담그기 어려워 상주 한 식당에서 재래식 된장을 공수해 먹는다. 그러고도 모자라 고향의 맛을 찾아 일 년에 몇 번씩 밥 먹으러 상주에 온단다. "그런데 그 집 된장 간장이 꽤 비싸요. 그래서 그 집 된장 사먹고 악착같이 음식 관련 글을 써서 본전을 찾으려고 해요.허허."
이왕 상주에 온 김에 "악착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의지로, 목적지인 오태저수지에서 꽤 떨어진 한 음식점을 찾았다. 비빔밥과 강된장을 하는 맛집이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자 성씨는 "자 그럼 더 맛있는 집으로!"를 외치며 더 구석진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고른 메뉴는 칼국수. 상주의 칼국수는 고기나 멸치 등 따로 국물을 내지 않고 통밀을 넣어 삶아 국물을 만든다. 그 국물에 채소를 넣고 같이 끓인다. 담백한 국수는 간장이 들어가서 맛을 돋운다. "두부에 들어간 콩, 상주에서 나온 겁니다. 요즘 외국에서 들여온 GMO(유전자조작) 콩으로도 된장을 만든다는데, 기름이 많아 된장이 맛이 없어요." 작가의 상주 맛 예찬이 이어진다. 투박하게 썬 두부, 메밀묵에 탁주 한 사발을 걸치니 작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태저수지로 향하는 길, 그가 묻는다. "사진은 포토샵 해주는 거죠?"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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