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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게코의 탐욕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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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게코의 탐욕주의를 넘어서

입력
2012.01.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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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시간은 내버려두어도 흘러가지만 역사의 시간은 내버려두면 멎어버리기도 하고 거꾸로 돌기도 하고 천방지축 뛰다가 시궁창에 처박히기도 한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시간이다. 그러나 역사의 시간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쓰면서 사느냐에 따라 산다는 것의 기쁨과 영광을 한층 높여 주기도 하고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슬프고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되게 하기도 한다. 2012년 한 해의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쓸 것인가?

한 해는 긴 시간이 아니고 그 시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나가는 일에 다시 착수할 수는 있다. 그 재착수 작업의 첫 단계는 총선과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세 토막 질문을 만나는 일로 시작된다. '나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우리들 한국인은 도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내가, 그리고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무슨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동의한 일도, 합의한 일도 없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를 먼저 확인해보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소수 부유층이 경제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다시피 챙겨가고 다수 국민은 생업의 어려움에 조석으로 허덕여야 하는 극단적 불평등사회를 만들자고 합의한 일이 없다. 우리는 1대 99의 비율로 상징되는 유례없는 빈부격차 사회를 만드는 데 동의한 적이 없다. 자영업은 줄줄이 엎어지고 골목골목의 소상인 생계수단들은 대기업 유통업체들의 '빨대'에 걸려 나날이 살길이 막막해지고 있다. 소득, 자원, 기회, 보상의 분배방식은 약자와 최저계층에는 너무도 불공정하다. 젊은 세대는 취업난에 울고 취업인구의 절반은 박봉의 임시직과 고용불안에 떤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원한 적이 없다.

불평등사회는 '3불 사회'다. 그것은 불행하고 불안하며 속속들이 병든 불신사회다. 한국인의 우울증, 정신장애, 자살, 폭력, 외향성 파괴행동 같은 사회병리적 현상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불행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동의한 바 없다. 기득권 수호에 여념 없는 정치가 공존의 정의를 파괴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는 동의한 적이 없다. 자유시장 '게코주의'(Gekkoism)가 공생의 윤리를 짓밟아 공동체적 신뢰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우리 누구도 합의한 일이 없다. 우리가 동의하고 합의한 것은 '너도 살고 나도 산다'의 공존사회이고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의 공생사회이지 그 반대의 사회가 아니다.

올리버 스톤의 1987년 영화 '월스트리트'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고든 게코는 "탐욕은 좋은 것"(Greed is good)이라는 '명언'을 남긴 인물이다. "자네 아직도 순진하게 민주주의 타령이냐? 그런 건 없네. 자유시장이 있을 뿐이야"라는 것도 그의 명언이다. 그에게 탐욕은 인간 진화의 원동력이고 성공의 복음이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가 나온지 20년이 지난 2008년에야 세계는 뉴욕 금융가를 파산으로 몰고 간 것이 바로 그 '게코의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러나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게코의 아이들은 지금도 미국을 주름잡고 있고 세계 도처에 건재 중이며 한국에도 무더기로 있다.

우리가 묵시적으로 합의한 사회는 국민이 고개 끄덕이며 받아들일만한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사회다. 시장제일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도덕성을 연결시키는 일에 코웃음 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정당성 없이는 자유시장 자본주의 자체가 지속할 수 없고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도 위기에 빠진다. 국민이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코의 탐욕주의를 넘어서기. 거기서부터 올해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모색이 시작됨직 하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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