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에 사는 민완식(64)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다. 육군 6사단에서 군복무 중에 휴가 나왔던 아버지 민영학 일병이 두 살배기 아들이었던 자신을 잠시 품에 안아준 것이 전부다. 6ㆍ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부대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이후 연락은 끊겼고 아버지가 전투 중에 전사했다는 황망한 통지서만 한 통 받았다. 그리고 60여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를 마음 속에만 간직해야 했다. 사방으로 수소문 해봤지만 유해를 찾지 못했다.
최근 국방부가 경북 의성에서 유해를 발굴하면서 비로소 한을 풀게 됐다. 민씨는 17일 “한평생 망연자실하며 힘겹게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가장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이라며 “이제야 아버지의 유해를 뵙게 된다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경북 문경에 거주하는 빈창식(79)씨는 형의 유해를 맞았다. 장남인 형이 전사한 뒤 부모님은 평생 가슴에 아들을 묻고 힘든 여생을 보냈다. 형의 유품은 휴가 때 전해준 군복입은 사진 한 장 뿐이었다. 빈씨는 “늘 형의 사진만 보며 착잡한 심정으로 살아왔는데 이번 설에는 형을 제대로 모실 수 있어 너무도 기쁘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최근 이들을 비롯해 6ㆍ25전쟁 때 전사한 국군 9명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 5명은 육군 8사단 소속이다. 1953년 7월 휴전을 앞두고 중공군이 최후의 공세를 펼 때 금성 돌출부 전투에 참가했다가 산화했다. 감식단은 유해와 함께 발굴된 인식표를 단서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머지 4명은 인식표가 없어 유전자 비교검사로 가족을 찾았다. 유전자 검사만으로 신원을 확인한 사례가 매년 1, 2건에 불과한 것에 비춰보면 많은 숫자다. 국방부는 유족 유전자 시료 1만2,000여개를 확보하고 있다.
발굴된 유해는 가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부대장이 직접 집을 방문해 신원확인통지서, 위로패, 유품과 함께 20일까지 전달할 예정이다. 유해는 6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국방부는 2000년 발굴 사업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총 6,000여구의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으나, 이 중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간 유해는 68구에 불과하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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