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과 기업 규모가 비슷한 두 회사가 있는데, 한 회사는 자본수익률과 대주주의 이해관계로 움직이고 다른 회사는 노동자의 이익을 우선한다면 어느 쪽이 고용 창출에 더 성공적일까요."
최근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몬드라곤의 기적> 에서 저자인 여론조사회사 아이알씨조사연구소의 김성오 대표가 이 같은 관점으로 비교하는 두 회사가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현대자동차와 스페인 기업집단 몬드라곤이다. 몬드라곤의>
두 회사의 자산 규모는 2010년 기준으로 몬드라곤이 53조원, 현대차가 41조원이다. 매출은 현대차가 36조원, 몬드라곤이 22조원. 현대차가 자동차 중심이고 몬드라곤은 제조업과 유통, 금융, 교육 등의 260개 기업 집합이라는 점도 다르지만 두 기업의 결정적인 차이는 소유 구조다. 자본금 6조 8,000억원 규모의 몬드라곤은 3만 5,000여 노동자 조합원이 지분을 나눠 갖는다. 현대차의 지분은 외국인이 40%, 특수관계인이 25%, 기타 소액주주가 35%를 갖고 있다. 특수관계인에 정몽구 회장이 포함돼 있고 그가 회사 경영을 좌지우지한다.
"몬드라곤은 자본금에 대한 이자와 이익배당금을 제외하면 조합원 노동자와 비조합원 노동자가 급여 차이가 없지만 현대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2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고용률도 몬드라곤은 비슷한 규모의 주식회사와 비교해 1.5배 정도를 유지합니다." '조합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결과다.
노동운동으로 열정적인 1980년대를 보낸 김 대표는 사회주의권이 도미노 붕괴를 맞고 난 뒤 협동조합운동에 새롭게 눈을 떴다. 90년대 초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는 책을 번역해 낸 것도 이 같은 협동조합기업의 훌륭한 사례를 국내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배우자>는 호세 마리아 신부가 주도해 1940년대 스페인 북부 바스크에서 작은 노동자생산협동조합으로 출발한 몬드라곤이 가전제품을 만드는 제조업과 금융, 유통을 중심으로 한 거대집단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몬드라곤의 기적> 은 1990년대까지 이야기를 담은 그 책의 이후 상황과 한국에서 몬드라곤 같은 기업이 나와야 할 필요와 가능성을 검토한 내용이다. 몬드라곤의> 몬드라곤에서>
협동조합 자체가 생경한 것은 물론 아니다. 국내에도 관제 조합으로 출발한 농협이나 축협이 있고, 신용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 그리고 이보다 더욱 친숙해진 생활협동조합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금융이나 소비자조합 형태이고, 몬드라곤처럼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한 생산자 조합 형태는 빈민 운동이나 일부 중소기업을 제외하면 눈에 띄지 않았다. 협동조합 설립의 법적 토대가 되는 '협동조합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한 게 지난해 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5년 동안은 '노동자기업인수지원센터' 대표를 맡아 기업 인수를 자문해온 그가 관심을 두는 것도 바로 이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이다. '단기 수익 확대보다 고용 확대를 기업 목표로 둔 기업이 생산성이 높고 성장 잠재력이 풍부하며 더 끈끈한 생명력을 가진다는 점이 입증되기만 하면 자본시장의 지도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999년 대우조선과 대우정밀 인수를 노조에 타진했던 적도 있는 그는 그래서 책만이 아니라 실제 한국형 노동자협동조합의 모델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대기업 하청이 아니라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한 중견기업을 타깃으로 노동자의 기업 인수를 지원하려는 것이다. 우선 필요한 것은 자본. 중견기업 중 노동자가 51% 이상 지분을 확보한 기업에 투자해 상당한 수익률을 낸 미국의 ACS(American Capital Strategy) 펀드를 좋은 모델로 여기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도 KCS 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투자증권사 등과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상반기 중 펀드가 출범하면 상장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인수를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기업이라고 무조건 성공을 보장받는 건 아니다. 생산자협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권익만을 우선하는 노조문화를 쉽게 넘어설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조합 기업이 "질 높은 고용을 확보하는" 대안 자본주의의 좋은 모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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