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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정치인' 문성근

입력
2012.01.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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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의 이름 앞에 정치인, 최고위원을 붙이는 것이 어색하다. 솔직히 못마땅하다. 그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정치노선, 그가 열렬히 지지했던 한 대통령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정치판에 뛰어든 지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그는 배우라는 착각, 배우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리라. 아마 그것은 '배우 문성근'을 잊지 못한 채, 깊지는 않지만 긴 만남에서 갖게 된 확신 탓일 것이다.

32세 늦깎이로 연극을 시작해 4년이 지난 1989년 가을, 그를 처음 만났다. 드라마 데뷔작인 MBC 미니시리즈 에서의 '현실에 고민하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할 수 밖에 없는 탄광촌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진솔하고 인상 깊었다. 저런 배우가 있었구나. 누구지? 궁금해서 그를 만나 얘기했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그가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고, 이미 연극 로 대학로에서는 이름을 날린 배우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배우 문성근은 확실히 안성기나 박중훈과 달랐다. 그들만큼 '스타'는 아니지만, 그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이미지와 색깔과 분위기가 있었다. 영화 속에서 때론 날카롭고, 때론 냉소적인 눈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과장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감정으로 현실에 반응하는 배우이고자 했다. 그는 같은 고발과 풍자를 선택했다. 사람들도 영화에서 그의 말과 몸짓은 거짓(연기)이 아니라 사실, 진실이라 믿었다. 누구보다 그가 진행을 맡았던 에 눈과 귀를 집중한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배우로서 그의 이런 역할과 이미지는 너무나 값지다. 연극, 영화, 드라마가 이따금 세상의 모순과 불의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그것을 진솔하고 설득력 있게 전해줄 배우가 있어야 한다. 바로 문성근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만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현실의 정치판으로 뛰어들었다. 10여 년 전, 문화운동가로 스크린쿼터 축소반대운동에 앞장섰을 때는 그래도 나았다. 배우가 스크린이 아닌 길거리로 나서야 할 만큼 절박한 그의 호소는 문화였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문화와 예술의 힘보다 정치권력의 힘이 크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스크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문화권력자로서 정치에 참여했고, 그렇게 해서 얻은 힘으로 이념과 정치노선에 집착해 문화정책을 조종했다. 노무현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침묵에서 보듯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자신의 소신을 뒤집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까지 나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외치고 있다. 그것이 100만 국민의 명령이고, 민란운동이란다. 그래서 아예 정치 전면에, 정당정치로 한 발 더 내디딘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영화에도 출연했으니 "문성근은 여전히 배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예전의 배우 문성근의 이미지를 잃었다. 사람들은 스크린 속에서의 그의 소중한 자산이었던 순수성을 100% 믿지 않는다. 그 자신부터 이제는 연기도 정치적 행위의 연장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을 비롯한 최근 출연한 일련의 사회고발영화에서 그가 과거와 달리 부정적인 이미지의 기득권층을 자처하고 나선 것 역시 계산된 선택이라면 그는 정말 더 이상 배우가 아니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배우라고 연기만 하고, 감독이라고 영화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이 어느 때보다 높아 국민들이'물갈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러나 이창동, 김명곤, 유인촌에서 보듯 문화예술인들에게 정치 참여와 정치적 편견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이 된다. 그런 점에서 자유로운 영혼과 상상력을 위해 몇 번의 유혹을 뿌리친 송승환이나 이수만의 고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들이 있어 우리의 영화보다는 뮤지컬과 K-POP이 더 우뚝 선 건지도 모른다.

'문화는 정치다'란 말이 있다. 문화인도 정치인이 돼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문화를 통해 세상을 풍요롭게 바꾸고, 정치도 그것을 문화에서 배워야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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