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천국' 미국을 '고속철 왕국'으로 개조하겠다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이 암초를 만났다. 천문학적 비용을 우려하는 정치권과 여론의 거센 반대 때문인데, 연방정부 예산 삭감이 핵심 쟁점인 올해 대선과 맞물려 고속철 건설 계획은 축소 또는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포스트는 16일 "25년 안에 미국인 80%에게 고속철 접근성을 제공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거창한 비전이 과도한 비용 및 정부의 능력을 의심하는 여론 때문에 정치적 문제로 비화했다"고 보도했다.
2009년 4월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 신칸센(新幹線) 등 해외 고속철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 주요 도시를 고속철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도시에는 최대 시속 400㎞의 고속철도망을 깔고, 대도시와 중소도시는 최대 시속 200㎞의 고속화 철도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시속 100마일(160㎞) 이상으로 이동한 뒤 몇 발짝을 걸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음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며 자동차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미국에 고속철이 가져다 줄 교통혁명을 예고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고속철에 대한 기대는 차갑게 식어 버렸다. 고속철 주요 통과 지역인 플로리다 위스콘신 오하이오의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은 "정부의 비대화(예산 증가)가 불가피하고 계획 자체도 경제성이 없다"며 연방정부가 보조한 예산을 반납했다. 예산권을 쥔 하원 역시 "8만㎞의 주간(州間) 고속도로가 깔려 있고 항공노선이 조밀한 미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한다.
50개주 중 유일하게 고속철 건설이 현실화해 올해 중 착공을 기대하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우선 예상했던 430억달러를 두 배 이상 초과하는 1,000억달러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보여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 노선도 인구 밀집지역인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곧장 잇기로 했던 구상을 바꿔 캘리포니아 중부 농업지대를 둘러 가는 노선으로 변경됐다. 이 때문에 고속철이 서부 캘리포니아의 악명 높은 교통정체를 해소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2017년 이후에는 연방정부 예산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우려해 공사를 서두르는 것도 문제다. 민주당의 조 시미티안(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은 "연방정부의 지원금을 의식해 많은 돈을 쏟아 붓는 것은 잘못"이라며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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