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비행기 타고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공부한 게 벌써 4년이에요. 요즘엔 젊은 친구들도 대학을 제때 졸업하기 어렵다던데, 나는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감개무량해요.”
캐나다 교포인 정인필(74)씨는 ‘만학도 중의 만학도’다. 1974년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 40여 년 만에 한국방송통신대 학생 신분으로 고국 땅을 다시 밟았고, 드디어 학사모를 쓰게 됐기 때문이다.
공부에 대한 미련이 방송대 입학으로 이어졌다. 정씨는 16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 캐나다에서 칼리지(전문대)를 다니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니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가 힘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수박 겉 핥기식 공부를 하고 있다는 답답한 마음에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고희를 맞은 2008년 방송대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한 그는 캐나다와 한국을 오갈 수 밖에 없었다. 캐나다에선 온라인 강의를 듣고 중간ㆍ기말고사 기간엔 한국을 찾아 시험을 치른 뒤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는 식이었다.
꾀부리지 않고 성실히 공부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영어’ 과목 외에는 수월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남들은 스터디 그룹까지 짜서 ‘열공’하는데, 난 캐나다에서 혼자 공부하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던 거죠.”
‘이대론 안 되겠다’는 위기감에 2학년 때부턴 캐나다에서 15년 간 해온 부동산 중개업을 접고 학기마다 한국에 머물며 학업에 전념했다. 스터디 그룹에도 참여했다. 스터디 멤버들과 강의 내용을 놓고 토론 했고 모르는 게 있으면 자신보다 한참 어린 교수를 직접 찾아가는 열정도 보였다.
시작할 때의 강한 의지가 흔들릴 때도 있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자취방에서 매 끼니를 시켜 먹을 때면 캐나다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때마다 “평생 품고 살았던 꿈인데 기왕 시작했으니 끝을 보겠다”고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성적은 점점 상승곡선을 그렸고 마지막 학기엔 141학점 취득에 3.0이 넘는 학점으로 졸업예정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최근 스터디 멤버들과 제주로 졸업여행을 다녀온 그는 12일 캐나다로 출국했다. 다음 달 22일 졸업식에 맞춰 다시 귀국할 예정이다. 정씨는 “‘동양철학산책’이라는 수업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며 “졸업 후엔 노자의 사상을 더 공부할 계획”이라고 했다.
“손자뻘, 아들뻘 대학생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를 4년 동안 마음껏 했더니 더 이상 아쉬운 게 없더라고요.”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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