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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꼼수와 한국 언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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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꼼수와 한국 언론사

입력
2012.01.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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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나꼼수)가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자 비판도 줄을 잇는다. 조중동이 최선두에 서서 지휘를 한다. 간혹 진보진영의 인사나 소위 지식인들 중에서도 비판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꼼수를 듣지 않거나 거리를 두는 사람 중에는 너무 바쁘거나 그 시끄럽고 '경박한'스타일이 싫은 사람들도 많다. '스마트 문화'의 문맹인 경우들도 있다. 그처럼 나꼼수에 대한 비판과 거리두기는 다양하겠지만, 주변에서 보니 의식적인 비판가들은 대체로 자신을 문화엘리트나 '지식인'이라 굳게 믿는 부류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엄하신 표정을 지으며 나꼼수를 '디스'하는 부류들은 때로는 조중동과 생각이 일치한다. 그들은 나꼼수가 정치를 희화화한다 나무라고, 나꼼수 청취자들을 우중(愚衆)이라 단정하고 싶어한다. 때론 심지어 그 청취자들에게 마치 파시즘의 혐의가 있는 것처럼 과장한다. 그러한 비판의 공통적인 배경에는 대중현상 자체에 대한 공포가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무의식적 혐오와 연관된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나꼼수 청취자야말로 가장 확실한 한국 민주주의의 주체가 아니겠는가.

특히 점잖은 '어른들'은 나꼼수의 언론으로서의 결격 사유를 지적하며 기성 언론이 제 역할을 하면 나꼼수 현상 같은 것이 사라질 것이라 편하게 이야기한다.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나꼼수 현상은 근대 문화사와 한국 언론사의 변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종이신문과 그 영향력에 기대어 사회를 지배하던 20세기식 미디어문화의 시대가 우리 눈앞에서 막을 내리고 있다.

SNS까지 보태서 생각하면 더욱 확실하다. 나꼼수와 SNS는 공통적으로 새로운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근거하며 결정적으로 대자본과 '직업 언론인'에 의지하지 않고 콘텐츠를 생산ㆍ유통한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와 미디어 수용이 1920년 이후 한반도에 전개되어온 근대를 종결짓고 문화적 포스트모던을 확고하게 한다.

따라서 설령 나꼼수 같은 게 없어진다 해도 기존 언론이 예전 같은 역량이나 권력을 회복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중동도 결코 이전처럼 여론과 국민의 의식을 장악하지 못한다. 다만 아주 '올드한' 미디어문화의 수용자들을 부분적으로 지배할 뿐이다. 이런 면에서 조중동을 전혀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20, 30대 대학생과 직장인들은 거의 아무도 조중동을 읽지 않는다. 단지 포털의 뉴스 제공 때문에 그리고 아직도 조중동의 '권위'에 영향 받는 다른 기성언론과 '어른'들의 중개 때문에 간접적으로만 영향 받을 뿐이다.

물론 여전히 조중동은 실재하는 강력한 힘이다. 그러나 조중동 자신도 종이신문 '바깥에서' 지배의 '편성'에 깊숙이 결부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려 노력한다. 청와대와 국회에 침투한 조중동 출신의 '언론인들'이 보여주는 것은 비근한 사례에 불과하다. 조중동은 '언론'과 무관해야 할 정치인맥ㆍ학벌ㆍ혼맥 같은 사익의 네트워크를 통해 재벌과 권력의 표상체계를 매개한다. 그들의 메시지는 지배블럭의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만 재생산되고 힘을 발휘한다.

나꼼수와 SNS는 이런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이지만 그 언론 기능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시각으로는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이전에 없던 스타일로 다룬다. 그러나 일부 기성 언론인들과 조중동이 언론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들먹일 때, 우리는 '적반하장' 같은 단어를 떠올릴 뿐이다. 오늘날 조중동과 공중파 TV 뉴스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는 분명 미디어문화사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듯하다. 나꼼수와 SNS가 언론과 공론장의 미래 전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낡은 지배의 방법으로써가 아니라 새로운 형식으로 99%의 의지가 담긴 공론장이 만들어지기를, 그리고 언론인들이 새로운 언론윤리의 전범과 소통의 구조를 다시 창출해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모든 '나꼼수'적인 것, 그리고 SNS와 함께 하며 말과 생각의 민주주의를 누릴 것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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