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조작 사건의 '딥 스로트(Deep Throatㆍ익명의 내부제보자)' 안유(68) 당시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과 한재동(66) 교도관이 25년 만에 공식석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14일 '박종철 열사 25주기 추도식'을 통해서다.
2003년 서울교정청장을 끝으로 퇴직한 안유씨는 15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학생들로부터 독재정권의 주구, 하수인 소리를 듣던 가해 집단의 일원이었다. 내가 한 일을 자랑할 만한 입장은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에 생존의 위험을 무릅쓴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민주주의의 여명은 훨씬 뒤에나 밝아왔을 것이란 평가다.
당시 경찰은 87년 1월 박종철씨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사실이 공개되자 하급 경찰관 2명을 고문 책임자로 지목해 구속했다. 하지만 안씨는 같은 해 2월 경찰 수뇌부가 영등포교도소로 구속된 경찰을 면회하러 왔을 때 참관하면서 실제론 경찰관 3명이 더 개입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씨는 76년 동아투위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돼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면서 인연을 맺어온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당시 민통련 사무처장)에게 알렸다. 이 전 의장은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 중이었다. 이 전 의장은 폭로내용을 담은 문건을 작성한 뒤 같은 해 3월 한재동 교도관을 통해 외부에 전달했다. 이들의 신원은 20여 년간 비밀에 부쳐지다 2000년대 말에 공개됐고 공개 석상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씨는 "퇴직 이후 이 전 의장이 역사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며 이름 공개를 권했지만 계속 거부해오다 2010년 후배가 쓴 '가시울타리의 증언'이란 책을 통해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며 "생각보다 내 이름이 알려져 칭찬도 많이 들었지만 옛 직장(법무부) 고위층으로부터는 좋지 않은 소리도 들었다"고 말했다.
추도식에서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가장 뜻 깊었던 일이 그때 일을 외부에 알린 것"이라고 발언한 한재동씨도 25년 전의 일을 기억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2004년 12월 퇴직한 한씨는 이날 통화에서 "이 전 의장이 건넨 폭로 문건을 갖고 교도소 문을 나서면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리면 거사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정의롭고 올바른 일을 한다는 생각에 겁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전달한 문건은 전직 동료 교도관인 전병용씨,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 등을 거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넘겨졌고 고 김승훈 신부가 5월18일 사제단 미사 때 공개하면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안씨는 퇴직 후 독서 등을 하며 집에서 소일하고 있고 2004년 12월 퇴직한 한씨는 현재 농어촌공사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부영 전 의장은 "두 분은 공안사범을 다루는 공무원이기 전에 민주주의를 바라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다"며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그 분들이 무사히 공직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책임이자 의무여서 20여년 동안 그들의 신분을 감춰왔다"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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