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비정규직 정책 모두 백화점식… 노조 교섭권 강화해야
복지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이 논쟁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의 복지논쟁을 '노동 없는 복지'라고 비판한다. 좁은 의미의 복지인 소득 재분배 방안에 대한 논의는 치열하지만, 노동자 내부의 분배 격차를 원천적으로 해소해 소득 재분배에 들어갈 비용을 줄이는 근본적 해법에 대한 모색은 없다는 것이다. '다리를 부러뜨려 놓고 목발을 주는 식'의 논의만 할 뿐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절반에 달하는 비정규직 문제는 선거를 앞둔 각 정당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 고령화시대에 접어든 노인들의 일자리, 한진중공업 사태로 상징되는 사양산업의 구조조정 등도 각 정당 앞에 놓인 과제다.
고용불안 해소 vs 차별개선 방점
여야 모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공언하고 있지만 방점을 찍고 있는 분야는 각기 다르다. 비정규직을 시장경제하의 '정상적인 고용'으로 간주하는 입장(보수), 불합리한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자는 입장(중도), '철폐해야 할 일자리'로 바라보는 입장(진보) 등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의 고용불안 해소에 방점을 찍고 있다. 지난해 연말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했던 '상용형 파견법'이 이런 시각을 대변한다. 이 법안은 파견업체와 파견노동자가 무기계약을 한 경우 현행법의 파견사용기간 제한(2년)을 없애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무기한 파견사용이 가능토록 하고 있다. 이들은 사용업체(원청)와의 계약이 만료되면 해고되는 파견노동자와 달리 고용이 보장되므로 파견회사에 국고를 지원해 양성화하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선거공약으로 '상용형 파견 양성'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마디로 "비정규직 사용은 불가피하니 대신 이들의 고용을 안정시키자"는 게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비정규직 차별개선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방안에 주력하고 있다. 현행 차별시정제도는 비정규직이 '같은 사업장내 동종 유사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비교해 차별이 있을 경우에만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차별 비교 대상을 '과거 동일 유사업무에 종사했던 정규직'까지 확장할 것을 공약으로 포함시켰다. 이럴 경우 과거 정규직이 했던 업무를 분리해 비정규만의 직무를 신설하는 '직군분리'방식으로 차별금지 법망을 피해갔던 기업의 편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민주당은 또 근로기준법에 '동일 사업 또는 사업장 내의 동일가치 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을 지급하도록 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동종 산업 내 임금격차의 해소를 꾀하겠다는 의지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도록 비정규직법을 바꾸고, 인력공급사업을 금지하는 '중간착취금지법'을 제정하는 등 비정규직을 아예 폐지하거나 혹은 최소화하는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다수 인력업체들의 영세한 상황에서 파견이나 시간제 등을 상용화하겠다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며 "비정규직의 폭증 추세를 완화시키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 시장친화 vs 정부개입
어떤 일자리를 만들 것이냐를 놓고도 여야의 시각은 극도로 갈린다. 공식 당론은 아니지만 당정이 추진해온 기조를 살펴보면, 한나라당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대신 고용이 안정된 '시간제'로 채워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복안이다. 반면 현재 시간제 노동자의 시급수준이 전일제 정규직의 60%에 불과할 정도로 임금격차가 극심하고, 시간제 노동자의 3분의 2 정도가 비자발적으로 이를 택하는 상황에서 '상용형 시간제'확대는 차별을 심화할 뿐이라는 것이 야당의 입장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시장친화성에 기반한 한나라당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중시하는 야당의 고용정책은 여러 분야에서 다르게 표출된다. 청년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야당 측은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에도 고용인원의 일정비율을 할당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청년의무고용부담금을 징수하도록 하는 '청년의무할당제'(통합진보당), 민간기업 3% 이상 청년고용권장(민주통합당) 등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런 고용할당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며 미지근한 반응이다.
또 정리해고와 관련해 한나라당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경영상 정리해고 요건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으며, 민주통합당은 정리해고 시 노동조卵珦?협의기간을 연장하거나 더 나아가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노동공약에서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는 부분은 실업급여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취업 청년층이나 실업급여 만료로 생계대책이 막막한 실직자들을 위한 실업부조의 도입, 정년의 법정 보장(60~65세) 정도다.
전문가들 "노조 교섭권 강화는 외면"
전문가들은 백화점식 여야 정책은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수고용노동자, 공무원 등의 노동기본권 확대, 산별 교섭제도 강화 등 노동자의 교섭권을 높여 임금격차를 줄이도록 하는 제도 개선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 미취업 저소득 청년층에게 주는 취업활동수당(1,529억원)과 저소득층 사회보험료 지원(1,549억원)에 거액의 예산을 추가하는 등 당장 표로 연결되는 '선심성 생색내기'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각 당의 고용ㆍ노동 정책은 산업구조의 재편과 연관된 거시적인 고민이 부족하다"며 "기업 성장을 유도해 고용을 창출시키겠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건 복지 환경 등 사회서비스 종사자의 처우를 개선해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려는 정책을 고민해야 고용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 당의 정책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게 의미 없는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비정규직에만 매달리지 말고, 영세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해 대기업이 어떻게 책임을 분담할지 정교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최저임금은 논란 중
"최저임금을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60%로 올려야 한다."(민주당)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고용감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한나라당)
최근 한국일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공동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최저임금 규제를 찬성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56.7%로 7년 전에 비해 1.9%포인트 높아졌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오르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욕구와 관심은 높아졌지만, 어느 정도가 적정한 최저임금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각 당의 공약이 크게 엇갈리는 배경에는 최저임금을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는' 임금 가이드라인이라고 보는 여당과 가구 간 소득격차를 줄이는 소득 재분배의 수단으로 보는 야당 간 시각차가 깔려있다.
야당과 노동계는 "우리 최저임금 수준은 국제적으로도 낮은 편이라, 생활임금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의 비율은 32.0%로 조사국가 19개국 중 16위로 처져있다. 당시 최저임금은 3.12달러로 OECD국가 평균(6.44달러)의 절반도 안 됐다. 그러나 인상률도 둔화돼 현 정부 지난 4년간 인상률은 2.75~6.1%로 참여정부 당시(8.3~13.1%)에 못 미쳤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낮은 최저임금은 근로빈곤층을 양산한다"며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상당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이 실제로는 낮은 편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인 박준성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OECD 통계는 국가별로 월급ㆍ일급ㆍ시급 등 제각각의 통계를 사용한 것이어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단일한 기준으로 다시 비교한 결과 우리의 최저임금수준은 OECD 6위에 해당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 경영계에서는 기본급과 고정수당만 포함하는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산정방식은 비정기적인 상여금, 숙식비, 팁까지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외국에 비해 과소평가됐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연구가 없다. 학계는 고용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최저임금 인상론-유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반대한다"며 "청장년층과 도시지역의 최저임금은 대폭 올리되 농촌, 고령층의 최저임금은 소폭 올리는 식의 차등적용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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