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인의 24시간/알베르토 안젤라 지음ㆍ주효숙 옮김/까치 발행ㆍ390쪽ㆍ1만8000원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추문은 물의를 빚지 않았을 것”이라고 책은 단언한다. 바로 그 앞, “로마인들의 정신 세계에 비추어볼 때”라는 단서가 있다. 도대체 거기는 어떤 세상이었을까. 고대 로마의 노예 검투사와 귀족을 둘러싼 폭력, 섹스의 풍경을 과잉 묘사,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 그려진 세상은 혹시 상당한 개연성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바로 그렇다고, 이 책은 말한다.
저자는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 등 그간 로마 대제국을 들여다 보는 창이었던 시스템적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 보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2,000년 전 로마의 최전성기에 살던 가상의 인물이 하루 동안 그리는 행적을 추적하는 접근법을 끝까지 견지한다. 그 세묘 덕에 독자들은 마치 소설에 빠져들듯 그들의 일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춘화에서나 봄직한 노골적 그림을 일반 가정집에서 버젓이 걸어 놓았던 곳, 고대 로마의 일상 풍경은 과연 어땠을까.
패션, 끼니별 식단에서 담벼락의 낙서까지 되살려 내는 책의 시선은 일견 쇄말주의적이기까지하다. 그러나 고대에서 가장 강성했던 제국의 중심부에서 벌어진 우수마발의 일상을 오롯이 되살려내려는 책의 의도를 제대로 좇으려면 저 정도로는 모자랄지도 모른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를 정치의 관점에서 재건해 냈다면 이 책의 관심은 사회사 혹은 미시사에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하루 여정을 심지어는 10분 단위로 꼬치꼬치 추적한다는 발상은 그래서 매우 유용한 틀로 기능하는 셈이다. 150만여명이 10만㎞에 달하는 도로망을 통해 만들어 내던 삶의 풍경이 오늘날까지도 약동하듯 전해져 온다. 탐나디오 아드 베스티아, 즉 콜로세움에서 맹수에게 잡아 먹히는 형벌은 책에 의하면 관객들을 위한 ‘공연’이었다. 지켜보던 황제에게까지 피가 튀던 광경을 되살려내는 책의 시선은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소설만큼이나 정밀하다.
이 책은 이탈리아에서만 40만부가 팔려나갔다. 이 출판사에서 나왔던 에두아르트 푹스의 명저 <풍속의 역사> 에 버금갈 만한 생생한 묘사는 잃어버린 시간들이 얼마나 풍성한 실체였던가를 후세인에게 일러주기에 족하다. 숫자로 본 로마, 로마 최대의 공중 목욕탕, 파티 음식의 레시피, 로마인의 이름이 긴 이유 등 각 장 말미에 붙어 있는 작은 읽을거리는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풍속의>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