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보료 올리고 90% 무상의료'案 선택의 기로에 서다
지난해 9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각종 건강보험 정책에 대해 "더 연구할 것도 없고 결단만 내리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굵직한 건강보험 정책들은 수많은 연구를 거듭해, 남은 것은 선택의 문제다. 특히 건강보험료를 인구 1인당 1만1,000원씩 더 내고 90% 무상의료(진료비의 90%를 보장 받는 것)를 실현하자는 제안이 2010년 학계인사들이 참여한 시민단체에서, 지난해 초에는 민주당에서 제시됐다. 가족 중 큰 병에 걸린 환자가 생기면 바로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서민들은 선거의 해를 맞아 이 제안을 두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시점이 됐다.
'입원료 90% 보장' 선수친 민주당
민주당은 일찌감치 지난해 1월 보편적 복지국가 공약을 발표하면서 무상의료 방안을 들고 나왔다. 2010년 건강보험하나로시민연대기 제안한 의제들을 대부분 끌어왔다. 집권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 부담률을 90%(현재 약 64%)까지 높이고 환자본인부담 상한을 연간 100만원까지로 제한, '실질적인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공약이 확정되지 않은 한나라당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면서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을 늘리고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며 "이번에 노인틀니 건보 적용 등이 그 예"라고 말했다. 즉 의료복지에 있어서 민주당은 획기적 전환을, 한나라당은 현 수준 유지를 전제로 점진적인 보장성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건보료 1만여원 추가로 가능한가
일단 건강보험료를 1만1,000원씩 더 내면 90% 보장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어떻게 나왔는지 따져보자. 현재 60% 가량인 건강보험 보장률을 90%까지 올리려면, 건보료 지출도 30% 늘어야 한다. 지난해 건보 총 지출이 37조원 가량이었으니, 여기에 12조6,000억원 가량을 보태야 한다. 민주당은 90% 무상의료에 도달하는 2017년에 13조원 가량의 투입액을 예상하고 있다. 여기서 직장가입자의 사용자가 납부하는 금액과 국고지원금을 뺀 나머지를 인구수(가입자ㆍ피부양자)로 나눠보면 1인당 월 평균 1만1,000원이 나온다는 것. 보장률을 이만큼 올리면, 민간보험을 따로 들 필요가 없어 가계에도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이는 어디까지나 산술적인 계산이라고 말한다. 개인부담이 줄어들수록 환자가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반영이 안됐다는 것이다. 의료가격이 10% 하락하면, 수요가 2.8% 증가한다는 주장도 있다.
5년 내 목표 달성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한국일보가 평가를 의뢰한 전문가 5명 중 4명이 비관적으로 봤다(표 참조). 이유도 여러가지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는 "현재 보험이 되는 진료의 본인부담률을 10%로 낮추겠다는 것이라면 가능하지만, 간병비 등 비급여를 모두 포함해 90%까지 보장하겠다는 것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진현 서울대 교수는 "보험료 인상에 국민이 동의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권순만 서울대 교수는 "5년보다는 더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규식 연세대 교수는 "정치적 구호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대부분 방향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권 교수는 "건보료 인상 필요성과 보장 확대의 중요성을 알린 점에서 아주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지불제도 개편, 의료계 반발 돌파가 관건
건보료만 올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은 현재 병원을 갈 때마다 돈을 내는 행위별수가제를, 아무리 병원을 많이 가도 질병별로 정해진 금액만 내는 포괄수가제로 바꾸는 방안과, 한 해 건보 지출을 병원들과 미리 협상해 일정 범위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총액계약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국영 의료체제 기반이 강한 복지 선진국들이 운용하는 제도들이다.
5명 중 4명의 전문가가 "무상의료를 추구한다면 지불제도 개편은 필수"라는데 동의했다. 지불제도 개편 없이 무상의료를 추구한다면 진료비가 눈덩이처럼 늘어나 그야말로 포퓰리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이 큰 장애다. 민주당은 현재 비급여인 항목을 건보 적용대상에 포함하고, 수가도 적정수준으로 올리면 이러한 지불제도 개편을 받아들이도록 의료계를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총액계약제는 의료계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관적으로 봤다. 권순만 교수도 "의료계가 총액계약제에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포괄수가제ㆍ총액계약제는 현재 팽배한 과잉진료를 막지만, 반대로 과소진료 가능성도 있다. 권 교수는 그러나 "과잉진료는 알아채기 어렵지만, 과소진료는 환자도 알 수 있으며 의료사고 위험이 커 병원들이 과소진료를 하기는 쉽지 않다"며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더 많은 제도"라고 말했다. 이어 "포괄수가제 등에 대해서는 이미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됐고, 이를 도입할 것이냐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김지은기자 luna@hk.co.kr
■ 암 환자부담 비용 평균 6000만~1억원
"내가 평생 벌었던 돈보다 더 들어갔다."
가수 임재범씨가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밝히며 암 투병 중인 아내의 치료비에 대해 한 이야기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에 따르면 암 치료비로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평균 6,000만~1억원에 달한다(건보 적용 진료비만은 1,000만~2,000만원). 돈을 버는 가장이 투병하는 경우엔 웬만한 중산층이라도 집안이 휘청거리게 된다.
정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의료보장제도"라며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체계를 치켜세우지만, 암 앞에서 그런 주장은 무색해진다. 건보 보장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서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펴낸 '2009년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암 보장률은 2006년만 해도 71%였다. 그러더니 2009년엔 67.9%로 추락했다. 건보 전체 보장률이 62.2%에서 64%로 높아진 2008~2009년에도 암 보장률은 69.8%에서 67.9%로 되레 떨어졌다. 난치병 환자의 진료비부담을 깎아주는 본인일부부담 산정특례를 도입해 암의 본인부담률을 10%(현재는 5%)로 제한했는데도 이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원인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비싸졌기 때문이다. 비급여는 선택진료비, 병실료, 주사료 등 10개 항목에 이른다. 특히 가장 급격하게 증가한 비급여 항목은 병실료다. 2008년 암의 비급여 의료비 중 13.9%를 차지했던 것이 2009년에는 24.6%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민간에서 암보험이 갈수록 활개를 치는 이유도 이런 '구멍'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의료계 반발 때문에 비급여 규제는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정리하지 않고서 무상의료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김용익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제대로 파악조차 안 되는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고 보험수가를 재조정해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보험료를 인상해 건보의 보장성을 90% 수준까지 끌어올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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