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관계로 구청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수은주가 크게 떨어진 11일 오전 11시 광화문 청계광장에 마련된 임시 발언대에 한 서울시민이 섰다. 시가 마련한 시민발언대에 처음 나선 조모(66)씨는 "지난해 12월 사업장 건물의 용도변경을 문의하기 위해 구청을 방문했는데 가져간 음료수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목소리가 왜 이리 크냐. 어느 대학 나왔냐. 악에 바치면 이런 사업 하지 마라'는 폭언을 듣고 내쫓겼다"고 성토했다. 조씨는 "박 시장의 말과 달리 시정의 주인은 주민이 아닌 공무원인 만큼 외부인뿐 아니라 내부 단속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시민발언대에 선 시민 15명의 공통분모는 분노였다. 출산을 앞두고 발언대에 선 김모(34)씨는 "가정 환경이 갑자기 어려워져 구청에 산모도우미를 신청하려 했는데, 지난해 소득만 기준으로 삼아 대상이 되지 못했다"며 "고운맘카드의 사용법 등을 알아보려고 구청에 전화하니 보건소, 의료공단 등으로 안내를 떠넘겨 세 시간 동안 30군데 통화를 하고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탁상행정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뜨거웠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황모(38)씨는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지정되면서 유독 만 2~3세만 혼합반을 편성할 수 없게 됐다"며 "피아제 등 학자들의 영ㆍ유아 발달 단계 연령 구분을 봐도 '만 2~3세 어린이의 합반은 절대 안 된다'는 시의 규정은 부당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날 시민의 호응은 뜨거웠지만 시의 발언대 운영은 미숙했다. 시 관계자들은 한 노인이 "6ㆍ15공동선언, 10ㆍ4합의서의 정신을 이명박 정부가 승계하면 연평도ㆍ천안함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자 "쓸데 없는 얘기 자르라"며 실무진끼리 쑥덕이더니 마이크를 끄고 발언자를 강제로 단상에서 끌어내렸다.
시 관계자는 "명예훼손, 특정정당에 대한 지지나 비판 등 정치적 목적의 발언은 제한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날 정치적 발언을 한 다른 시민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아 '정치적 발언'의 기준이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는 "발언 내용을 녹음ㆍ녹화해서 시정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의 발언을 시정에 연결하는 시스템은 아직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민원과 겹치는 발언들이 꽤 있는데 민원창구는 따로 있어 애매한 점이 있다. 발언 내용을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프로세스는 3개월 시범운영 기간 동안 잡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발언대는 매주 수요일 오전11시부터 오후3시까지 운영하는데, 일주일 전에 신청한 시민만 참가할 수 있다.
서울시는 고건 전 시장 시절인 2002년 광화문에 빨간색 전화부스를 설치해 시장 핫라인을 운영했으나 장난전화가 폭주하자 얼마 못 가 폐지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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