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에서 솔로 가수가 사라지고 있다. K팝 열풍을 타고 아이돌 그룹이 대중음악은 물론 한류 산업의 첨병으로 떠오르면서 솔로 가수들은 찬밥 신세가 됐다. TV 가요 프로그램을 봐도, 연예 뉴스를 봐도 온통 아이돌 그룹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요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주요 기획사들은 올해도 솔로보다는 그룹에 중점을 둘 전망이다.
아이돌 그룹의 대중음악 잠식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디지털 음원과 앨범 상위 10위(가온차트 1~11월 집계 기준)는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동방신기, 빅뱅, 티아라, 2NE1 등 아이돌 그룹들 차지였다. 솔로 가수로는 앨범 차트 8, 10위에 김현중이 올라 있고 디지털 음원 순위에 MBC '나는 가수다'로 뜬 김범수, 2NE1의 박봄, 아이유가 올라 있을 뿐이다. 예능프로그램 출연 가수와 아이돌 그룹에 소속된 가수를 제외하면 아이유가 사실상 유일하다.
SM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가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인 목록에도 아이돌 그룹들만 올라있다. SM은 남성 그룹 EXO-K와 EXO-M를 내놓고, YG는 상반기에 여성그룹, 하반기에 남성그룹을 데뷔시킬 예정이다. JYP엔터테인먼트나 큐브엔터테언먼트, TS엔터테인먼트, FNC뮤직 등도 신인 아이돌 그룹을 준비 중이다. 큐브가 준비 중인 MBC '위대한 탄생' 출신의 노지훈을 제외하면 신인 솔로 가수는 거의 없는 셈이다.
대형 기획사들이 솔로 가수를 외면하는 것은 한마디로 시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포미닛, 비스트가 소속된 큐브의 홍승성 대표는 "아이돌 그룹이 많고 인기도 높다 보니 솔로 가수가 살아 남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티아라가 소속된 코어콘텐츠미디어의 권창현 이사도 "방송, 언론매체, 대중 모두 아이돌 그룹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솔로 가수가 좀처럼 화제가 안 되기 때문에 기획사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요계 솔로 시장도 결국 아이돌 그룹의 몫이다. 그룹 멤버가 솔로 활동을 병행하거나 한 기획사 내 그룹들 멤버끼리 유닛 활동을 하는 일이 이젠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빅뱅의 태양과 승리, 2NE1의 박봄, 포미닛의 현아 등이 그룹과 솔로 활동을 겸하고 있는 가수들이다. YG의 박헌표 실장은 "그룹 내에서 솔로나 유닛 활동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기획사들이 그룹을 더 선호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솔로도 좋지만 개성 있는 여러 가수들이 모여 그룹으로 나오는 게 대중에 대한 접근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국내 대중음악 산업은 이미 아이돌 그룹 위주로 재편돼 보아, 비, 이효리 같은 대형 솔로 가수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최근 1, 2년간 등장한 솔로 가수 중에선 아이유와 지나 정도가 그나마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여성 솔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퍼포먼스가 약한 남자 솔로 가수는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지난해 새 앨범을 낸 성시경 이승기 김동률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거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가창력 있는 솔로 가수도, 아마추어 신인 가수도 TV 예능프로그램의 도움 없이 히트곡을 내는 건 힘든 세상이 됐다. 기획사들이 퍼포먼스 등 볼거리에 많은 노력과 비용을 투입한 결과 아이돌 그룹의 해외 진출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이뤄내긴 했지만, 국내 가요계는 기형적인 산업 구조의 고착화로 인한 부작용이 적지 않다. 대규모 자본이 가요계를 좌지우지하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더불어 음악 장르의 편중화 현상이 더 심해졌다.
키위뮤직의 이진영 이사는 "아이돌 그룹 한 팀을 데뷔시키려면 10억~20억원이 들기 때문에 자본력이 있는 회사가 독식하는 구조가 된다"며 "자본의 힘으로 방송과 언론, 광고 등을 독점해 버리면 실력 있는 가수들을 알릴 기회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도 "살아남으려면 돈이 되는 음악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다양한 음악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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