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어제 박희태 국회의장 전 비서 고명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자진출석 형식으로 고씨를 불러 조사했다. 고씨는 2008년 전당대회 경선 때 박희태 후보 캠프에서 일했으며 고승덕 의원 사무실에 문제의 돈봉투를 들고 간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다. 돈봉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열쇠를 쥔 핵심 중 한 사람인 셈이어서 그의 입에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의혹의 실타래를 푸는 검찰 조사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모양이다. 박 의장 측이 고씨는 돈 봉투를 건넨 사람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고 의원에게 돈봉투를 전달했다는'뿔테 안경을 쓴 30대 초중반의 남성'이 고씨가 아니라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노란 봉투가 잔뜩 든'쇼핑백을 들고 고승덕 의원실을 찾아간 실제 인물을 찾아내기까지는 진상 규명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박 의장의 처신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만 해도 전당대회 당시 그의 캠프에서 거액의 돈봉투가 뿌려졌으며 그 중에 하나가 고 의원에게 전달됐음은 분명하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아무리 발뺌해도 빠져나갈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그렇다면 깨끗이 책임을 인정하고 검찰 조사에 협조하는 것이 옳다. 상황은 뻔한데 과거 보좌진을 고생시키며 검찰조사에 혼선을 빚도록 하는 것은 자신을 더욱 욕되게 할 뿐이다.
물론 말처럼 쉽게 인정하고 털고 갈 수 없는 사안이긴 하다. 살포한 돈봉투와 전당대회 때 실제 쓴 비용 전체 규모를 밝힌다면 당장 그런 거액의 출처가 문제된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비춰 그런 규모의 돈은 합법적으로 마련될 수 없다. 당시 친이계가 박 의장의 대표 당선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는 점에서 계파 차원의 후원이 있었거나, 박 의장이 조달했을 가능성, 17대 대선자금 잔금설 등이 정치권 주변에 벌써 무성하다. 어떤 경우가 됐든 또 다른 불씨를 낳을 수밖에 없다. 판도라의 상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저런 고려로 질질 끈다고 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와 박 의장 자신, 그리고 총선을 3개월 앞둔 한나라당에 더 깊은 상처만 안길 뿐이다. 결단을 내려 빨리 매듭 짓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자신들 역시 돈봉투 살포설에 휘말린 민주당이 국회의장 사퇴 결의안을 들고 나오는 것은 꼴사납지만 의장직 사퇴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백의의 신분으로 검찰 수사에 응함으로써 잘못된 정치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야말로 정치원로로서 그에게 남겨진 마지막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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