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중ㆍ고교 20여곳에서 상납액을 정한 뒤 하청을 주는 피라미드식으로 돈을 빼앗아온 학교폭력 조직이 적발됐다. 특히 가해 학생이 50여명, 피해 학생은 700여명에다 지난 3년간 금품 갈취액이 수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0일 강남ㆍ서초구 일대 20여개 중ㆍ고교 학생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하고 협박한 혐의로 김모(18)군을 구속하고 상납을 지시한 이모(21)씨에 대해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학교폭력 조직원인 신모(16)군 등 3명을 포함, 가해학생이 50여명에 달하는 사실을 확인, 금품갈취 및 폭행가담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동네 및 학교선배인 이씨의 지시를 받은 김군 등은 2009년부터 최근까지 강남 일대에서 학생들에게 상납액을 정해주고 돈과 금품을 모아오라고 지시했다. 김군은 후배들을 자신이 사는 서초구 오피스텔로 부른 뒤 손발을 묶은 채 쇠파이프로 때리는 식으로 위협해 돈을 뜯어냈다. 김군은 빼앗은 돈 가운데 일부를 이씨에게 상납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자신의 생활비와 유흥비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압수된 김군의 수첩에는 상납 받고 싶은 물건으로 추정되는 명품 시계 제품명과 MP3와 같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제품 목록이 적혀 있었다. 특히 의류는 '그냥 갖기'라고 기재돼 있어 학생들로부터 그냥 옷을 빼앗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학생들이 돈을 조금만 가지고 다닌다는 점을 알고 피해 학생들이 부모에게 옷을 산다고 해 받아낸 돈을 빼앗는 방법도 사용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협박을 받은 여학생 중에는 자살 충동을 느낀 학생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상납 고리는 상납액을 할당 받은 학생이 또 다른 학생에게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연결됐다. 특히 신군과 황모(16)군 등은 이씨가 시킨 대로 강남 일대에서 각자 담당할 학교를 서너 구역으로 나눠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상납 지시를 받고 동료 학생으로부터 돈을 갈취한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한 학생은 "돈을 모아오거나 잡다한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일상화돼 있어 조폭과 다를 바 없었다"고 실토했다.
학교폭력 및 금품갈취의 정점에 있던 이씨는 돈을 뜯어내는 역할을 맡은 김군 등 후배에게도 직접 폭력을 행사했다. 김군 등은 경찰조사에서 "이씨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유도복을 입히고 헤드기어를 끼게 한 뒤 대리석 바닥에 수 십 차례 내리꽂거나 온몸을 마구 때렸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유도사범 출신으로 고2 때 조폭 가입을 제의 받은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며 "조폭 조직과의 연계 가능성도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한 학생이 2주 전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될수록 피해 액수가 늘고 있다"며 "특히 가해학생이나 피해학생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강남 지역 외에서도 상습갈취를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서울 전역의 중고교를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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