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 노배우의 몸놀림은 가볍고 목소리는 쩌렁쩌렁하다. 불룩한 갑옷에 냄비 투구를 쓴 채 자신의 키만한 창을 들고 뒤뚱거리며 걷는 광인의 모습에서는 귀여움마저 느껴진다.
명동예술극장이 제작한 연극 '돈키호테'는 타이틀롤을 맡은 노배우 이순재의 열연 만으로도 눈길이 가는 무대다. 나이를 잊게 할 만큼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그에게, 400년 전 스페인 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손에서 탄생해 지금까지도 모험과 도전의 대명사로 꼽히는 돈키호테의 캐릭터는 맞춤옷 같다.
연극은 수많은 '돈키호테'의 각색본 중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를 쓴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앵 사르두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원작에 삽입된 액자소설 중 바람둥이 귀족 돈 페르난도(한윤춘)와 도로시아(김양지), 젊은 기사 카데니오(최광일)와 루신다(김리나)의 이야기를 주 소재로 하는 구성이다. 묘하게 얽힌 네 남녀의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한국 정서로 재해석한 '한여름밤의 꿈'으로 호평을 받아 국내외 공연계에 이름을 알렸던 연출가 양정웅씨는 연극을 마당극에 가깝게 꾸몄다. 일부 배우들은 연기를 하는 사이사이 소품을 들고 나와 무대 배경의 일부인 풍차나 나무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종종 관객과 쌍방향 소통을 시도하는 캐릭터도 있다.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를 중첩시켜 희극성 속에 숨겨진 비극성을 극대화한 미국 극작가 데일 와써맨의 뮤지컬 버전 '맨 오브 라만차'가 국내에 잘 알려진 상황에서 희망적 메시지로 급하게 마무리 되는 극의 결말은 다소 아쉽다. 뛰어난 해학성에 비해 모순된 현실에 대한 풍자는 약하다.
특별히 '음악극' 등의 수식어를 달지는 않았지만 음악과 무용의 비중이 커 명절을 앞두고 가족이 다 함께 관람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이순재, 한명구가 번갈아 연기하는 주인공뿐 아니라 산초(박용수), 오티즈(정규수) 등 조역까지 실력파 배우들로 채운 캐스팅이 안정감을 준다. 2010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2%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모았다. 22일까지. 1644-2003.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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