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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시가 되다/ 김경주 산문집 '밀어'… 몸의 섬세함 은유·상징으로 더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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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시가 되다/ 김경주 산문집 '밀어'… 몸의 섬세함 은유·상징으로 더듬어

입력
2012.01.1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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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골은 육체가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선의 풍경' '눈망울은 몸 안의 천문대' '무릎은 살 속에 숨어있는 마을' '젖무덤은 불심(佛心)을 만나러 가는 처녀지'….

'몸에 관한 시적 몽상'이란 부제를 단 산문집 <밀어> (문학동네 발행)는 몽롱하면서 매혹적인 은유와 상징으로 몸의 각 부위를 더듬는다. 귓불, 솜털, 뺨, 입술, 유두, 관자놀이, 아랫배, 점, 눈망울, 복사뼈, 갈비뼈 등 마흔 다섯 곳이 대상이다. 의학자라면 각 부위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저자는 그 부위가 독자적으로 열어 제치는 몽상의 세계를 탐색한다. 그는 시인이니까.

저자는 시인이자 극작가, 문화기획자이며 한때 야설작가와 대필작가 생활도 했다는 김경주(36)씨다. 무시로 가방을 짊어지고 여행을 다니는 그는 몸의 사유에서도 몽롱한 방랑객의 시선으로 신체 곳곳을 무람없이 돌아다닌다. 각 부위에 대한 의학, 철학, 미학, 언어학, 인류학 등 다양한 텍스트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그것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갈증을 채우는 것은 시적 상상력이다. 이를테면 그에게 목선은 '잠자는 육신을 공중으로 데려갈 때 필요한 선'이며, 핏줄은 '아직 발견되지 못한 채 물 속 깊이 떠다니는 슬픈 대륙'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티베트 여행을 떠난 그는 이메일을 통해서 "좋은 시는 몸을 관통해서 쏟아진다"며 "시적인 질감을 몸에 집어 넣어 몸과 시를 밀애시켜 보고 싶은 상상력에서 출발한 책"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다양한 정서가 신체 부위를 지렛대로 삼아 표현되는 경우가 많듯이 시 역시 몸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책은 지난 10여년간 시를 쓰고 신체극 이미지극 등 실험극을 해오면서 몸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던 그간의 작업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다양한 부위 중 그가 특히 애착을 느끼는 대상은 속눈썹, 보조개, 귓불, 머리카락. 김씨는 "이런 부위들이 우리의 몸 속에 은근하면서 희미하게 숨어 있지만, 하나의 식물처럼 자라며 섭생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제가 그동안 써온 시에도 그에 얘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몸에 대한 관심은 그러나 성적 욕망을 비켜가기 어렵다. 특히 현대 대중문화의 주 소비대상도 몸이다. 온갖 신체 부위의 성형 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초콜릿 복근, 꿀벅지, S라인, V라인 등의 신체 담론도 범람한다. 김씨는 "몸은 욕망에 의해 늘 모욕을 당했다"며 "현대는 욕망의 문제로 몸에 도달하고 싶어 하지만, 저는 언어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몸의 섬세함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적인 작업은 욕망보다는 열망에 가까운 작업이라 생각한다"며 "몸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열망할 때 자기 몸에 솔직해질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책에는 '시차적응' '빛의 유목' 등의 사진전을 연 사진작가 전소연씨가 신체 각 부위의 아름다움을 조명한 사진작품이 풍성하게 실려 있어 시각적인 멋을 더한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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