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전당대회 때마다 유력 후보들이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현금을 뿌리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2008년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당선된 박희태 국회의장도 예외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당시 캠프 관계자 등의 증언을 들어보면, 박 의장 측이 쓴 선거 자금이 상당한 거액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 일각에선 "당시 총 30억~40억원 가량을 썼다는 소문도 있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당시 박 의장 캠프 소속이었던 한 인사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 의원이 300만원을 돌려 보냈다는 얘기를 듣고 박 의장이 매우 기분 나빠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 의장 측이 고 의원에게 돈 봉투를 보냈다는 사실을 간접 시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인사는 "전당대회를 하루 또는 이틀 앞두고 당협위원장이 '아군'인 지역들을 골라 전대 당일 대의원들의 차비와 식대 등의 명목으로 300만~500만원씩 내려 보내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고 전했다. 당시 친이계의 조직적 지지를 받았던 박 의장은 상당수 당협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전체 245개 당협 중 100곳 정도에만 현금을 보내도 3억~5억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당직자는 "선거 기간 중에도 일부 당협위원장들에게 한두 차례에 걸쳐 200만~500만원씩 별도의 뭉칫돈이 은밀하게 전해지고, 캠프에서 직함을 맡은 의원들은 비공식적 활동비를 받는 것이 관례였다"고 말했다. '대선 캠프'를 방불케 했던 박희태 후보 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의원들에게도 거액의 현금이 건네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박 의장 측에서 돈 봉투를 받은 현역 의원들의 명단이 공개될 경우 메가톤급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리스트'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9일엔 '당시 박 의장 캠프에서 서울 지역 조직을 담당했던 모 당협위원장이 소속 구의원들을 시켜 서울 당협 30곳의 사무국장들에게 50만원씩 돌리려고 했다가 일부 구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당대회 후보들의 '관리 대상'이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권 관계자는 "당협위원장이 비우호적인 지역엔 당협 사무국장이나 지역 시의원, 구의원 등에게 100만원 정도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박 의장 캠프에서 일했던 일부 인사들은 당시 조직적 선거자금 살포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 관계자는 "정권 실세 A씨와 B 의원, 박 의장과 가까운 사업가 등 원외 인사 3, 4명 등이 핵심 역할을 했고, 그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무진급의 다른 인사는 "우리는 당시 의원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경률 장광근 정태근 의원 등 당시 캠프 소속 의원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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