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추위가 여전한 9일 낮 12시 서울시청 별관 앞에 뇌병변 장애1급인 한명수(44)씨가 외롭게 서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흘깃 한번 눈길만 줄 뿐 모두 그를 지나쳐갔다. "시청 공무원들 보라고 하는 건데"라는 짧은 하소연에도 서울시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는 이날 시설에 거주하지 않는 장애인의 주거대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한씨는 "추워도 이렇게 나와서 노력해야 제도가 바뀔 수 있다"고 힘겹게 말했다. 말을 할 때마다 일그러지는 입이 얼어붙어 평소보다 말하기가 배로 힘들다. 털 장화와 장갑, 목도리로 중무장했지만 한기 앞에는 도리가 없었다. 한씨가 몸에 두른 피켓에는 '지금의 행복이 계속되길…'이라고 써 있었다.
2009년 9월 36년간의 장애인 복지시설 생활을 끝낼 때만 해도 한씨는 꿈에 부풀었다. 은평구 대조동의 보증금 1,000만원과 월세 4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 둥지를 틀었고, 인생 설계도 새롭게 했다. 보증금과 집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도 받았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행동)'과 '노들 장애인 자립 생활센터' 같은 장애인 지원단체도 한씨 등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지원단체 덕분에 탈시설 장애인 17명이 3년 동안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말이면 이 지원은 끝난다. 그렇게 되면 한씨를 포함한 17명의 중증장애인은 당장 살 곳을 잃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서울시에 "장애인 탈시설 정책으로 운영 중인 '체험 홈'과 '자립생활가정'의 입주 자격과 물량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이들은 지원 확대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청 관계자는 "체험 홈과 자립생활가정은 시에서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퇴소한 분들을 돕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이미 퇴소했거나 지방의 시설에서 올라오신 분들까지 전부 수용하기에는 예산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체험 홈의 경우 입주 자격은 서울 시내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나온 지 6개월 이내인 장애인으로 한정돼 지방의 장애인에겐 해당이 안 된다.
김은애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이분들 요구는 당장 살 곳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의 장애인들도 체험 홈 입주 자격을 갖도록 해달라는 것"이라며 "장애인에게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데 서울시가 '나 몰라라'하는 건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씨는 "한 달 수급비 43만원, 장애연금 18만원이 수입의 전부인 상황에서 향후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섭고 답답하다"며 "서울시가 은평구에 임대아파트를 많이 만들어서 집을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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