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생각하면 사람이 생각난다. 선거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고 이념과 비전과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역시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당의 공천을 받아 공직 후보자로 출마하는 사람은 정당의 정체성을 체현하고 있는 사람이고 당의 이념과 비전과 정책을 구현할 능력과 의지를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고 선택하는 것은 그를 공천한 당을 선택하는 것이며 그를 공천한 당의 정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당이냐 사람이냐'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당보다는 사람에 주목하는 것이 좋겠다. 당은 없어져도 사람은 남는 법이며 어느 당도 아닌 무당파 무소속 정치인도 있지 않은가? 아니 무엇보다도 우리가 뽑는 국회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헌법기관이어야 한다면 정당이 아니라 그 인물이 헌법기관에 걸맞는 윤리와 권위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점검해봐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선출직에 도전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매력'이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받아야 한다는 우스갯 말도 있지만, 적어도 수십만 명의 대중으로부터 선택받아 국회의원에 뽑힐 사람이라면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 다름의 요체가 바로 '매력'이다.
국회의원이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지역의 소영주처럼 군림하는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기는 어렵다. 권력을 좇아 줏대없이 몸을 낮추고 아무 때나 굴신하는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낄 사람 또한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돈이면 다 된다면서 돈자랑 선거를 하는 사람, 밤낮없이 경조사 인사로 표밭을 가는 사람, 중앙·실세와 가깝다면서 공천을 호언장담하는 사람, 상대를 헐뜯느라 정작 자기 얘기는 할 짬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유권자 또한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매력없는' 사람들이 선거때마다 당선돼 정치권을 오염시켜온 것은 왜일까?
그동안의 선거는 "사람은 좋은데..."라는 말을 듣는 후보가 떨어지는 선거였다. "사람은 좋은데..."의 뒤에 숨어있는, "당이 마음에 안들어서", "지역이 아니라서", "학교가 달라서"같은 전근대적 사고체계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난 선거까지는 '매력은 없어도', '같은 당·같은 지역·같은 학교'라는 연고 후보가 선거에서 이겼다. 사람을 뽑는 선거에서 정작 사람은 사라지고 지역과 학교가 행세하는 선거였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해보나마나 한' 선거가 재현될 것인가? 그렇다면 김부겸도 이정현도 문재인도 살아오기는 애시당초 글렀다. 선거에 진다고 이들이 정치를 못할 바는 아니지만 4월 총선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새로 짤 대선판에 제대로 된 발언권을 갖고 끼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생사를 궁금해 하는 것은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이들이 감당하고 있는 정치적 고통이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짊어져야 할 역사적 부채이기 때문이다. 30년 권위주의 정치와 20년 3김정치의 끝자락에 아직도 매달려있는 우리 정치의 연고주의 구태정치라는 반 역사성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이들의 '무모한' 도전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 발전을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역사란 말 그대로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낡은 정치는 비록 그 생명이 다해도 온갖 수단을 다해 잔명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정치에 패악을 저지르는 법이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정치의 힘으로 낡은 정치를 타파하는 것이다. 새 정치를 희구하는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정치 질서,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정당 구조, 새로운 인물들을 세우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쇄신의 이름으로, 민주당이 통합의 이름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일 터이다.
2012년 총선이 지역주의와 연고주의를 넘어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아내는 정초 선거가 되었으면 한다. 새 정치를 향한 희망의 씨앗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2012년 신년벽두다.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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