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할 쓰레기를 잔뜩 안고 아파트 입구를 나서다가 그만 발을 구르고 말았다. 딛어야 할 계단이 세 칸이나 남아 있었는데 글쎄 한 칸이라 착각을 했던 것이다. 한쪽 다리가 붕 떠 착지하지 못하는 순간, 박스 안을 빼곡히 채웠던 몇 권의 월간 잡지하며 빈 술병들, 다 먹고 난 햇반에 뚜껑을 딴 참치 캔까지 모조리 쏟아져 시끄럽게 나뒹굴었다.
그보다 저 멀리 화단 쪽까지 빛의 속도로 날아간 내 휴대폰을 어째. 내게 조금이나마 환상을 가진 누군가라면 갑작스레 시상이 떠올라 골똘했던 것은 아닐까 위로했겠지만, 나를 완전히 직시하는 누군가라면 단번에 휴대폰을 가리키며 쯧쯧 혀를 찼을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고 집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고작해야 십분 언저리일 텐데, 그새 초를 다투며 지켜야 할 식구의 임종을 앞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자나 깨나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걸까. "괜찮으세요?" 커플 점퍼를 입은 한 젊은 부부가 휴대폰을 건네며 물었을 때 그들을 한참 올려다보던 내가 있었다.
"네, 고맙습니다!" 그들로부터 휴대폰을 받아 들고 일어나려 했을 때 뼛속까지 시린 엉덩이를 한참 쓰다듬던 내가 있었다. 넘어져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올려다볼 때의 그 예리하면서도 예민한 각도, 걸을 땐 몰랐던 길바닥의 그 차가운 온도를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 한 일주일쯤 휴대폰 없이 살아볼 일이다. 외로우니까 우리, 휴대폰을 놓치듯.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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