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퀸(65)은 입지전적 성공담을 자랑하던 아일랜드 제1의 갑부였다. 소농의 아들로 태어나 열네 살 때 학업을 접고 생업에 뛰어든 문맹의 소년은 100파운드를 빌려 채석장 사업을 시작했고 그 후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일궜다. 2008년 포브스 집계에서 퀸의 재산은 60억달러(6조 9,660억원)로 세계 부호 순위 164위였다.
그러나 퀸의 사업체는 '빚으로 건설한 제국'이었다. 과도한 차입 경영은 아일랜드 경제가 침체에 접어들며 위기를 맞았다. 팽이치기처럼 계속 빚을 넣어야만 돌아갈 수 있었던 그의 사업은 부동산 가격이 고점 대비 60% 추락하고 은행이 구제금융을 받으며 붕괴했다. 손해를 만회하려 파생상품에 손을 댄 것은 결정타였다. 그는 최근 법원에 파산 신청을 내며 현금 1만1,000유로(1,636만원), 구형 벤츠 1대, 166에이커(20만평)짜리 토지가 전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이게 전부일까. 28억유로(4조 1,636억원)를 떼인 채권단은 퀸이 해외사업망을 통해 재산을 빼돌렸다고 확신한다. 7일 뉴욕타임스(NYT)는 "아일랜드가 퀸의 은닉재산을 찾기 위해 전 세계적 추적을 시작했다"며 "퀸에게 돈을 꿔준 은행이 국유화됐기 때문에 재산 찾기는 국민 세금을 돌려받는 작업"이라고 보도했다.
채권단은 퀸이 지난해 4월 경영권을 상실하기 전부터 재산 빼돌리기를 준비해 온 정황을 최근 확인했다. 해외 재산을 정체불명의 재단 한 곳으로 모으겠다는 계획이 담긴 극비문서가 발견됐는데 이 재단은 복잡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퀸의 손자가 소유한 조직으로 드러났다. 채권단 관계자는 "회사를 껍데기로 만든 뒤 채권단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재산을 숨기는 신종 수법"이라 강조했다.
일부 은닉 재산은 꼬리가 밟혔다. 조세 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소재 법인이 보유한 우크라이나의 쇼핑몰(4,500만달러), 아랍에미리트 회사가 보유한 인도의 호텔 부지(500만달러) 등이 예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법원이 쇼핑몰의 아일랜드 반환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면서 재산 환수가 난항을 겪고 있다.
퀸과 그의 자녀들은 채권단이 이미 몰락한 자신들을 상대로 과도한 추심 활동을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퀸의 딸 이프(30)는 "채권단은 빚을 받아 내려는 게 아니라 (은행이 몰락한 것에 대해)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탐욕이 파멸을 부른 게 아니라, 세계 금융위기의 희생양이 되었을 뿐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퀸은 여전히 자녀 명의의 호화 저택에 살면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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