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내에서 민둥산을 보기 힘들다. 불과 40년 만에 우리 숲은 푸르러졌다. 정부가 1973년부터 '산림기본계획'이란 녹화사업을 시작한 덕분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숲이 앓고 있다. 나무를 심기만 하고 가꾸지 않아서다. 한국일보는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산림녹화 4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우리 숲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점검해보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 산림은 11배 울창해졌지만 햇빛 충분히 못받아 '시들'
햇빛 안 드는 숲
임목축적량은 단위면적 1헥타르(㏊)당 자라는 나무의 총 부피를 말한다. 산림녹화사업 첫 해인 1973년 국내 산림의 평균 임목축적량은 11.3㎥/㏊였다. 2010년엔 이 수치가 125.61㎥/㏊로 약 11배 증가했다. 1ha 면적에 있는 나무를 다 잘라서 5t 트럭에 실었을 때 1973년엔 2대 정도 분량이었는데, 2010년엔 23대나 된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 임목축적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임목축적량(104.5㎥/㏊)보다 높다. 1982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라고 평가했다.
숲이 울창해졌다는 건 나무가 많아지고 크게 자랐다는 얘기다. 나무가 자랄수록 가지 수는 늘고 사방으로 뻗는다. 이렇게 나뭇가지가 점점 많아지면 햇빛을 가려 숲에 드는 햇빛의 양이 줄어든다. 국립산림과학원 김석권 산림생태연구과장은 "숲에 드는 햇빛 양이 평지의 50% 이상은 돼야 나무 밑에서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때 가지치기를 하고 가꿔줘야 나무뿐 아니라 숲 전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꾸지 않은 숲이 어떻게 병 들어가는지는 산림과학원이 경기 포천시 죽엽산 자락에 있는 광릉숲에 조성한 시험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시험림에 있는 잣나무의 나이는 45살로 같은데, 굵기가 제각각이다. 지름이 크게는 10cm까지 차이 난다. 다른 나무의 가지에 가려 성장이 느려진 탓이다.
또 나무 밑에는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유난히 낙엽이 많이 쌓여 있다. 미생물이 낙엽을 유기물(영양분)로 분해하지 못해 수년 치의 낙엽이 썩지 않고 고스란히 남았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햇빛이 드는 양이 평지의 20%밖에 안 돼 미생물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런 곳에선 다른 식물이 싹을 틔우기 어렵다. 유기물 공급이 안 돼 토양이 척박해지고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북이 쌓인 낙엽이 물을 죄다 흡수해버리니 비가 웬만큼 와선 땅을 적시지도 못한다. 김 과장은 "이곳 나무들은 수십 년 안에 집단 괴사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립공원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이런 병든 숲이 산재해 있다"고 말했다.
나무 자르면 무조건 환경파괴?
가지치기와 함께 건강한 숲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 잡목 제거다. 잡목은 햇빛이나 영양분이 부족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쭉정이 나무'를 말한다. 산림과학원은 15년생 잣나무 숲에서 주변 잡목을 그대로 둔 그룹과 모두 제거한 그룹의 성장 양상을 비교해봤다. 그 결과 잡목과 함께 자란 잣나무는 10년 뒤 지름이 5cm 굵어지는데 그쳤지만, 잡목 없이 자란 나무는 14cm나 더 두꺼워졌다.
산림 전문가들은 나무를 자르면 무조건 환경 파괴라고 보는 건 오해라고 지적한다. 나무는 10년마다 가지치기나 간벌을 해야 잘 자란다. 그런데 사유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아까운 나무를 왜 잘라내느냐는 식이다. 국내 전체 산지의 약 70%를 차지하는 사유림은 제대로 관리가 안 돼 병들기 십상이다.
숲 가꾸기 면적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기준 전국 산림 면적은 636만8,000㏊. 이 중 정부는 매년 24만㏊ 산림을 대상으로 숲 가꾸기 사업을 진행한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 배상원 연구관은 "매년 24만㏊라고 하면 10년 주기로 가꿀 수 있는 총 면적은 240만㏊에 그친다"며 "나머지 400만여㏊의 숲은 서서히 기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국내 목재 자급률은 13%에 불과하다. 산림녹화사업으로 40년간 나무를 심었어도 아직 대부분의 목재를 외국에서 사다 쓰는 게 현실이다. 보통 50년생 이상인 나무를 목재로 쓰기 때문에 앞으로 10~20년 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숲을 만들고 목재 자급률을 높이는 등 실질적인 이득을 얻으려면 심은 나무를 제대로 가꿔야 한다. 국내 산림은 한창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30년생 이하의 나무가 전체의 60%나 된다.
한국일보·국립산림과학원 공동 기획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 숲이 울창해도 산사태 피해 크다?
숲이 울창할수록 산사태가 잘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빗물에 쓸려 내려가지 않게 나무뿌리가 흙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산림에선 이와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80년대 231헥타르(㏊)였던 연간 산사태 피해면적이 숲이 더 울창해진 2000년대 들어 713㏊로 오히려 3배 넘게 늘었다. 국립산림과학원 김경하 산림방재연구과장은 "과거에 비해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산사태의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림의 토양은 맨 위부터 차례로 낙엽이나 부러진 나뭇가지가 쌓인 낙엽층, 여기서 분해된 유기물이 스며들어 생긴 표토층과 심토층, 그 아래 바위층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표토층과 심토층에는 유기물을 먹고 사는 지렁이나 땅강아지의 이동 통로가 많이 나 있다. 땅으로 스며든 빗물은 대부분 여기에 저장된다.
문제는 땅에 저장될 수 있는 양보다 비가 훨씬 많이 내리는 경우다. 땅에 스며들지 못한 빗물이 지표를 흐르면서 흙을 점점 쓸어 내리기 때문이다. 이게 심해지면 산사태가 된다.
산에 나무가 별로 없던 과거에는 비가 많이 와도 비교적 작은 면적에서 흙과 모래(토사류)가 쏟아져 내리는 소규모 수준에 그쳤다. 그런데 요즘은 숲에 나무가 많고 큰비가 좁은 지역에 집중된다. 뿌리를 바위층까지 깊게 내린 나무가 집중호우를 견디지 못하고 뽑히면 다량의 흙과 무거운 바위(토석류)가 한꺼번에 튀어나온다. 이들이 빗물과 섞여 빠르게 흘러내리면서 피해를 키우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강원도 평창과 영양, 경상북도 봉화 등 몇몇 지역을 위주로 토석류 산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 서초구 우면산과 춘천 신북읍 마적산 등 대도시 주변에서도 생겼다.
김 과장은 "표토층과 심토층이 두터워지도록 숲을 가꾸면 더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 토석류 피해가 더 잦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은 전국 토석류 산사태 예측지도를 만들고 있다. 토석류 피해 범위를 위험지역과 주의지역으로 나눠 알려주는 것이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높이 6m 이상의 콘크리트 벽(방재댐)을 세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토석류 산사태가 심한 일본에는 이미 곳곳에 방재댐이 설치돼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 유럽도 사막화 가속… "스페인 국토 50년 내 30% 황폐화"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 지역은 점점 황무지로 변하고 있다. 한때 이곳에선 오렌지 나무를 길렀다. 하지만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사하라 사막의 모래가 바람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앞으로 50년 안에 스페인 국토의 30%가 사막으로 변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이탈리아 등 다른 남부 유럽 국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서북부에 있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도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수십 년 간 매년 35억~70억kg의 나무를 땔감으로 소비한 결과, 모래바람을 막아주고 다른 동식물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던 숲의 면적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남한 면적(1,000만㏊)의 절반인 600만㏊의 땅이 매년 사막으로 바뀌고 있다. 근래에 사막화가 진행된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벌써 수십 년째 사막화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아시아에서 사막화된 토지 면적은 16억7,100만㏊로 사하라 사막이 있는 아프리카(12억8,600만㏊)보다 넓다.
UNEP는 그 원인으로 과도한 벌채와 경작, 기후변화를 꼽는다. 울창했던 산림이 사라지면서 땅이 황폐해지고, 사막화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실제 전 세계 산림 면적은 1990년대 41억6,839만㏊에서 20년새 1억3,539만㏊ 감소했다.
사막화는 강한 바람이 모래를 흩날려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없게 한다. 그 악순환이 계속 일어나면서 면적을 서서히 넓힌다. 그래서 일부에선 높은 벽을 쌓아 모래바람을 막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비용이 많이 들고 친환경적이지 않다. 나무를 심거나 풀씨를 파종해 흙을 고정시키는 게 가장 근본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현재 국내외에선 사막에서도 잘 자라는 고구마 등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물이 적고 고온인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을 개발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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