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뮤지컬 '쓰릴 미'의 제작사 뮤지컬해븐은 난데없는 항의 및 환불 요구 전화 폭주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쓰릴 미'는 2007년 국내 초연한 라이선스 뮤지컬. 햇수로 5년째 공연되고 있지만 여전히 평균 객석 점유율 7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흥행작이다.
이처럼 관객 충성도가 높은 공연에 느닷없이 항의가 빗발친 것은 다름 아닌 연출가 노승희의 말실수 때문. 노씨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 공연 관객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글을 올린 게 발단이 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손쉽게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개방성과 전파력이 강한 특성상 종종 설화(舌禍)의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 최근 SNS를 통한 관객과의 소통에 부쩍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공연계도 예외는 아니다. 연출가, 제작사 직원 등이 관객에 대한 불평, 불만을 개인 트위터 계정에 올린 후 곤혹을 치르는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공연계에 'SNS 설화 주의보'가 내려진 셈이다.
트윗 한 줄이 수백 만원대의 손해로
노승희씨는 2개의 트위터 계정을 사용한다. 공연 연출가임을 밝힌 계정(@director92)과 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용도로 쓰는 익명의 계정(@Coquette0819)이다. 첫 번째 계정을 통해 들어오는 '쓰릴 미'에 대한 관객의 부정적 의견에 반박하는 글을 남겨왔던 노씨는 3일 익명 트위터로 지인과 대화하며 "관객이 맨날 보러 오는 이들(반복 관람객)로 한정돼 있다. 그래서 (그들을) 크레이지라 부르는 거지"라고 썼다. 지난 1일에는 첫 번째 계정에 "저를 팔로하시는 쓰릴 미 팬 여러분, 늘 감사드리고 새해 복 많이 와장창 받으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적은 뒤 익명 계정에는 "제1계정에다 내 욕하는 ㅆㄹㅁ(쓰릴 미) 광팬 팔로워들에게 복 받으시라고 썼다. 새해 첫날 나는 군자의 예를 갖춘 것이지"라고 남겼다.
이 같은 그의 트윗이 4일 이미지 파일 형태로 삽시간에 트위터와 블로그, 공연 커뮤니티 등을 통해 퍼져 나가면서 '관객을 모독한 연출가'라는 비난 여론이 확산됐다. "공연은 관객이 있어야만 의미가 전달되는 예술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내고 자신의 작품을 보는 관객을 크레이지라 칭한 것은 과도한 모욕"이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급기야 제작사는 공연 홈페이지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4~10일 1주일간 공연 예매에 대해 취소 수수료 없이 환불 조치 하겠다"는 사과문을 띄웠다. 5일 하루 동안에만 주요 예매 사이트와 제작사를 통해 1장에 4만~5만원 하는 티켓 수십 장이 환불 처리됐다.
반복 관람객이 VIP가 아닌 크레이지?
노씨는 바로 2개의 트위터 계정에서 '쓰릴 미' 관련 글을 모두 지웠지만 이미 퍼져 나간 그의 발언은 여전히 온라인에서 회자되고 있고 공연 팬들의 비난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팬들은 연출자가 충성도 높은 소비자인 반복 관람객을 우대하기는커녕 비하하는 발언을 한 데다 비판이 제기된 후에도 사과 한마디 없자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씨는 예전에도 이번 공연을 이전과 비교하는 관객 평가에 대해 "나는 한번 보는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지 기존의 열광적인 팬들 구미에 맞는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하지만 뮤지컬 연출가 조용신씨는 "태생적으로 마니아 관객이 타깃인 이 작품의 기존 재관람객을 홀대하면서 다른 성취를 이룰 수는 없다"며 "만약 관객층을 바꾼 새로운 버전을 만든다면 그것은 원작자 스티븐 돌기노프의 몫이 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씨의 직접적인 사과 없이 온라인 게시판에 달랑 환불 공지문만 띄운 제작사의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뮤지컬해븐 측의 미온적 조치는 지난해 가을 비슷한 트위터 설화를 겪었던 뮤지컬 제작사 설앤컴퍼니의 대응과 대조된다. 당시 설앤컴퍼니는 갈라 콘서트 '뮤직 오브 더 나잇-지킬&팬텀' 공연 관람 후 음향 상태를 문제 삼은 한 관객의 항의를 들은 직원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에 대한 불평을 올려 크게 곤혹을 치렀다. 이 트윗을 발견한 해당 관객이 더 큰 분노를 표출하자 설앤컴퍼니 측은 결국 홈페이지에 음향 결함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띄우고 총괄 임원이 직접 관객을 만나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혁찬 설앤컴퍼니 이사는 "직원들의 SNS 이용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지만 사적인 영역으로 보이는 SNS가 공연을 관심사로 둔 이들에게는 공적인 영역이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활용하는 것이 필수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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