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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금융권 사내커플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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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금융권 사내커플의 희로애락

입력
2012.01.0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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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들은 행내 부부를 '대체방'이라 부른다. 행내 결혼을 은행 내 계정처리를 뜻하는 은행용어 '대체'에 빗댄 표현인데, '방'은 거래 때 전표나 영수증에 찍는 고무인을 말한다. 다른 은행 직원과 결혼하면 '교환방'이라 부른다. 은행끼리 주고 받는 거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은행원이 고객과 맺어지면 '출납방'이다. 은행 안팎으로 돈이 오갔다는 뜻이다.

신세대 대체방

하나은행 서여의도지점에 근무하는 박병천(31) 대리와 신촌역지점 소속 이현진(29ㆍ여) 대리는 신세대 대체방이다. 두 사람은 2년여 교제를 한 뒤 지난해 3월 결혼,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주상복합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집이 근무지와 가까운 건 은행이 배려해 발령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대체방은 구조조정 1순위였다. 당시 도산위기에 몰린 은행들 사이에서 대규모 정리가 불가피하다면 그래도 한 사람은 벌 수 있는 대체방 직원이 우선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쪽의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다른 쪽이 그만두는 일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대체방 중 여성이 집중 해고되면서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신세대 대체방에게는 먼 옛날 얘기다. 요즘 은행들은 대체방을 맺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2008년 말 입행한 남편 박 대리는 이듬해 초 '신입직원 육성소'로 불렸던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의료원지점에 배치됐다. 당시 이곳에서 이미 2년 간 근무 중이었던 아내 이 대리는 "당시 지점장님이 지점 내 미혼자들을 맺어주려 여러모로 배려했다"고 회상했다. 둘이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이 대리가 지점장의 권유에 못 이긴 체하며 졸업예정자로 은행에 들어온 박 대리의 대학 졸업식에 꽃을 들고 참석하면서부터다. 이 대리가 마음에 있었던 박 대리는 자연스레 이 대리를 가족들에게 소개했다. 이후는 일사천리. 박 대리는 업무상 직속선배였던 이 대리와 함께 야근한 뒤 퇴근하는 시간을 적극 활용해 이 대리의 마음을 빼앗았다.

두 사람의 결혼 발표 직후인 2010년 10월 이 대리가 지금 근무지인 신촌역지점으로 발령됐다. 은행권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금융사고 예방 차원에서 사내 커플을 한 지점에 두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박 대리는 "집에서 만날 수 있으니 헤어짐이 이별은 아닌 셈"이라며 웃었다.

은행이란 직장

행내 부부가 된 후 느끼는 직장의 장ㆍ단점은 대부분 은행 조직 특유의 전문성 또는 폐쇄성에서 비롯된다. 장점으로 첫 손에 꼽히는 게 업무 지식의 공유다. 박 대리는 "서로의 담당 업무가 대부와 예금상담으로 다르다 보니 업무 지식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라며 "각 소속 지점의 노하우를 서로에게 알려줄 수 있어 영업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상호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어 의사소통도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이 대리는 "늘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해야 한다는 점이 은행원이 어려움을 느끼는 가장 큰 요인인데, 남편이 고충을 토로하지 않아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 입장에선 위안을 받을 수 있어 든든하다.

반면 은행원 간의 관계가 너무 가깝다는 점은 단점이다. 우리은행 대체방인 이모(37) 과장은 "인사이동이 영업점 간 순환 형태여서 한 다리만 건너면 대부분 다 아는 사이가 된다"며 "한 쪽이 사내에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 피해가 배우자에게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행내 결혼은 영업에도 상대적으로 불이익이 된다. 박 대리는 "전혀 다른 직종의 배우자를 구했다면 영업을 위한 인맥 확대에 도움이 됐을 텐데 우리 부부는 인맥이 대부분 겹쳐 상대적으로 손해"라고 털어놓았다.

돈 엄청 벌 거다?

은행원은 고수익과 안정성을 고루 갖춘 선망 대상 직종이다. 따라서 대부분 일반인들은 "행원 부부이면 돈을 아주 많이 벌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대체방들은 한결같이 손사래를 친다. 역시 대체방인 김모(37) 과장은 "월급 중 실적급 비중이 크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동료들 사이에서도 보수 격차가 벌어져 실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물론 업무 지식이 재테크에 도움이 되는 점도 있다. 박 대리는 "좋은 상품이 나오면 우리 부부가 먼저 고객이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출 금리 혜택도 있다. 하나은행은 1억1,500만원 한도 내에서 전세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준다. 하지만 세대당 적용이어서 대체방이란 이유로 2배의 수혜를 입는 건 아니다.

투자 측면에선 되레 은행원이 일반인보다 못하기 십상이다. 박 대리는 "증권가엔 은행원들의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펀드는 끝난 거란 우스갯소리가 있다"며 "그만큼 은행원들이 보수적인 집단이란 얘기"라고 말했다. 이 대리도 "둘 모두 과감하지 못한 성격이어서 적절한 투자 시기를 늘 놓친다"며 "얼마 전 중국 펀드 끝물에 함께 들어갔다 큰 손해를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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