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권력/이준웅 지음/한길사 발행·584쪽·2만7,000원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 결정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 폭넓은 언론 자유 보장에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인터넷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이고 이용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서 '후보자 간 경제력 차이에 따른 불균형을 방지한다'는 결정 이유의 일부는, 누구나 사회적인 불평등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는 법 정신을 담은 것이다. 상대를 모욕하는 비난이나 거짓 비방이 아닌 이상 '백가쟁명'케 하라는 말이다.
<말과 권력> 에서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의사 표현의 권리와 그것을 보장할 시스템이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사적으로 살피고, 현대 정치에서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있다. 말과>
저자는 가장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원형을 서양 민주주의의 전당인 고대 아테네에서 찾는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다중이 누린 '말하기 권리' 위에서 구축됐다. 특히 공적인 장소에서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발언의 자유를 말하는 '이세고리아',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파레시아'는 '레토릭'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는 아테네 의사소통 시스템의 골간이었다. 레토릭은 화자의 명예가 걸려 있는 사회적 실천이었고, 논쟁으로 번질 때는 제3자의 판결을 구하는 경연이었으며, 공동체의 앞날을 결정하는 토론에서 정치 엘리트가 다중과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아쉽게도 플라톤의 폄하도 한몫을 해 아테네 이후 단순히 말 꾸밈 정도로 평가절하되고 말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이론, 그 중에서도 '숙의 민주주의'는 이 레토릭을 민주주의의 핵심 이념으로 재평가한다. 숙의 민주주의는 의사소통을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제기하고 갈등의 해결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피시킨 같은 학자들이 제시하는 여론조사 모형은 너무 엄격해서 오히려 현실 속의 의사소통을 가로 막는 측면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너무 이상적인 대화 상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면서 이 같이 과도한 제한 조건을 걷어내 개방적으로 의사소통하는, 아테네식 레토릭을 닮은 '의사소통 민주주의'를 저자는 새롭게 주장했다.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라는 구체성까지 담지는 않았지만 ▦의사결정에 누구나 공평하게 참여할 정치적 평등성 ▦비폭력 ▦경연적 말하기 문화의 활성화 등을 통해 '모두가 말하고, 모두가 듣고, 모두가 판단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이런 열린 참여를 통해서만 '정당한 권력'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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