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오른쪽의 서양미술사/제임스 홀 지음ㆍ김영선 옮김
/뿌리와이파리 발행ㆍ720쪽ㆍ3만 3000원
손은 그 자체로 언어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몸의 어느 쪽에 달렸는지에 따라 사회적 상징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비록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왼손과 오른손은 한 몸에 붙어 있으나 각각이 가진 의미는 판이하게 다르다. '난 왼손잡이'라며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왼손은 불온하고 고독하며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반면 다수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오른손잡이는 올바른 동시에 권력임을 드러낸다. 역사 민속학자 주강현씨는 저서 <왼손과 오른손> 에서 왼쪽과 오른쪽은 서로 대립하기도 하지만 굳이 왼쪽의 문화사를 드러내는 것은 마이너리티에 대해 재인식하고 다문화주의에 대한 접근을 촉구하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왼손과>
왼쪽과 오른쪽에 대한 이분법적인 태도는 우리에게만 익숙한 것이 아니다. 예술사가이자 비평가로 활동 중인 제임스 홀은 <왼쪽-오른쪽의 서양미술사> 를 통해 서양미술에서 표현된 왼쪽-오른쪽 상징의 변화 과정을 추적한다. 그동안 그림 속 사과에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혹은 비너스의 사과를 연상했다면 저자는 사과를 딴 이브의 손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파고든다. 왼쪽-오른쪽의>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른쪽은 선하고 이성적이며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와 달리 왼쪽은 세속적이고 여성적이며 사악하다는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에서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예수의 고개를 왼쪽으로 향하게 한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이 작품이 기존의 불문율을 깬 일종의 도발로 받아들여진 것은 방향성에 대한 서양인들의 시각을 드러내는 하나의 예다.
중세 신비주의자들은 심장이 있는 왼쪽을 사랑이 깃든 방향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 왼쪽과 오른쪽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마침내 왼쪽은 감성과 인간애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결국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의 예수의 얼굴 방향은 인간을 향한 따스한 사랑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켈란젤로와 동시대에 활동한 티치아노는 '거울을 보는 베누스'에서 왼쪽에는 베누스(비너스)의 풍만한 나신을, 오른쪽 작은 거울에는 비너스의 얼굴과 어깨만 비춤으로써 성스러운 눈(오른쪽)과 불경한 눈(왼쪽)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있다.
책은 왼쪽-오른쪽 상징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식을 시작으로, 그 의미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왼쪽과 오른쪽이 재평가 되는 근현대까지 아우른다. 그동안 서양미술을 해석하면서 간과해온 왼쪽-오른쪽의 의미 변천사를 끄집어낸 것도 독특하지만 문학 신학 과학 등을 종횡무진하며 시대를 초월한 서양의 방대한 인류 문화사를 통찰한다는 점도 각별하다. 본문만 580쪽이 넘지만 이 대담한 시도에 호기심이 발동한다면 기꺼이 동참해 볼 만하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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