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호(52)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수식어가 많다. '런던의 전설'(1992~99년 런던에서 한국주식 영업 최고실적) '최고의 국제통'(99년 귀국 이후) '증권업계 최연소 CEO'(2007년 47세로 한국투자증권 사장 취임) 등이다.
명성에 치이다 보면 과욕을 부리기 쉽지만 그가 이끄는 한국투자증권은 5년간 꾸준히 알찬 성과를 내고 있다. 삼박자(개인-기업-해외) 영업 구축, 장 등락에 흔들리지 않는 수익구조, 증권과 펀드를 통합한 양손잡이 영업(종합영업직군제) 최초 도입, 삼성생명 기업공개(IPO) 성공, 프라임브로커(PBㆍ투자은행 전담중개업자) 자격 최초 취득까지. 조용히 쌓아 올린 수많은 성과들은 좀체 평상심을 잃지 않으며 조곤조곤 설명하는 유 사장의 목소리 톤과 닮았다.
구랍 30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집무실에서 만난 유 사장은 올해 경제상황이 썩 좋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묵묵히 가야 할 '두 길'을 제시했다.
일반 투자자들에겐 '올레(골목의 제주사투리)길 투자'를 권했다. 유사장은 "상반기까지는 유럽 재정위기가 세계경제 발목을 잡아 올해 증시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모습을 보이고, 코스피지수는 1,650~2,250선이 될 것"이라며 "고수익을 좇는 등산 개념의 수직적 투자보다 올레길을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은행 금리+ α'에 만족하는 수평적 투자를 지향하라"고 조언했다. 적합한 투자상품으론 10%정도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주가연계증권(ELS)과 최근 하락해 오히려 밝아 보이는 금, 지난해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정보기술(IT)과 중국 관련 종목을 꼽았다.
증권업계에게는 바른 길(正道)을 제시했다. LIG건설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 스캘퍼(초단타 매매자) 사건, 증시 폭락에 따른 자문형랩 추락 등 지난해 증권업계엔 악재가 속출했지만 한국투자증권은 거의 무풍지대였다. 유 사장은 "경쟁사가 몸집을 불리려고 지난해 스캘퍼를 받아들일 때, 우린 선을 넘은 것이라 판단하고 아예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사 본령인 수수료 수입이 일반관리비보다 높은(직원 생산성이 높은) 유일한 증권사, 리서치평가 1위, 유사장 취임 전보다 위탁매매 점유율 두 배 상승 등의 열매를 얻었다. 그는 "운도 좋았지만 길이 아니면 가지 않은 덕"이라며 "올해도 어렵겠지만 정도 경영을 이어가 새로운 전설을 써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또 올 한해 서둘지 않고 내실을 쌓겠다고 밝혔다. 새로 도입된 헤지펀드와 프라임브로커는 당장의 성과보다 향후 1~2년 실력을 쌓을 계획이고, 베트남 현지법인(KIS 베트남)은 2015년까지 현지 5위로 성장하도록 올해는 기틀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그는 "중국 법인도 있고, 인도네시아 공부도 하고 있지만 해외진출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에 대한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 해법 중 하나로 금융허브 전략을 추진하고 있지만 "홍콩 싱가포르 수준까지 규제를 대폭 줄이지 않으면 경쟁력 있는 국제 금융허브를 만들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부동산에 편중된 우리나라 가계 자산구조를 바꾸려면 금융자산 투자가 장점을 지녀야 하는데,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기엔 여전히 규제가 많다"는 지적도 했다.
대담=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정리=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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