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작품이다. 무대는 1930년대 만주벌판. 식민지 조선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대륙에서 호기롭게 떠돌던 조선의 풍운아 3명이 각각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만나 벌이는 추격전이 주 내용이다. 올 시즌 남자 프로배구 판에도 이와 비슷한 '놈 놈 놈 놈'들이 코트를 휘젓고 있어 화제다. 만주벌판처럼 춥고 배고프지는 않지만 최종 승자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물고 물리는 혈투는 여전하다. 문용관 KBS N해설위원은 "프로선수는 팬이라는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은 존재"라며 "팬들의 입에 '놈 놈 놈'처럼 회자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좋은 놈
대한항공의 네맥 마틴(28)이다. 지난 시즌 V리그 1위 대한항공은 정작 챔피언 결정전에선 삼성화재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0-4로 무너졌다. 어이없는 패배를 당한 대한항공은 올 시즌 슬로바키아 대표팀의 주포 마틴을 영입해 이를 갈았다. 반환점을 지난 V리그 순위에서 대한항공은 삼성화재에 이어 2위다. 그러나 용병성적만 놓고 보면 마틴이 출중하다. 마틴은 3라운드까지 득점 4위, 공격 2위를 지키고 있지만 대표팀 차출로 3경기를 결장한 것을 감안하면 억울한 성적표다. 이 와중에도 서브에선 2위 문성민(0.34개)을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고 1위(세트당 0.63개)를 달리고 있다. 마틴은 특히 지난달 25일 드림식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3호째 트리플크라운(후위공격ㆍ서브ㆍ블로킹 득점 각 3점 이상)을 작성하는 등 3라운드에서 대한항공의 전승을 이끌어 최우수 선수에 뽑혔다.
나쁜 놈
캐나다산 폭격기 가빈 슈미트(27)다. 가빈은 3시즌 연속 국내 리그를 싹쓸이 하면서 최장수 용병 반열에 올랐다. 괴물이란 표현으로 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소속팀 삼성화재가 '가빈 몰빵배구'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를 중용하는 이유가 '가빈 출전=팀 승리'라는 공식이 통하기 때문이다. 가빈이 다른 구단으로부터 "공공의 적, 나쁜 놈"으로 불리는 결정적인 이유다. 한국배구에 100% 적응한 가빈은 올 시즌에도 가공할 공격력을 앞세워 팀을 선두로 이끌고 있다. '당연히' 득점과 공격1위는 늘 그의 몫이었다. 득점은 2위 안젤코(KEPCO)에 무려 100점 이상 앞설 정도로 언터치블 공세다. 녹슬지 않은 무쇠팔로 코트에 맹폭을 퍼붓는 가빈이 4~6라운드를 넘어 포스트시즌, 나아가 챔피언 결정전까지 나쁜 놈으로 악명을 떨칠지, 또 다른 나쁜 놈에게 덜미를 잡힐 지 관심이다.
착한 놈
백전노장 최태웅(36ㆍ현대캐피탈)이다. 최태웅은 원래 삼성화재의 남자였다. 99년 한양대졸업과 함께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단한 최태웅은 11년 동안 같은 팀에서 세터라는 한 우물을 팠다. 컴퓨터 세터라는 별명답게 삼성화재의 모든 공격은 그의 손에서 비롯됐다. 삼성화재가 챔피언 결정전 3연패 등 통산 5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최태웅은 지난 시즌 팀의 외면을 받았다. 이때 받은 충격은 발암(림프암)이란 형태로 나타났다. 암과의 사투에서 승리한 최태웅은 올 시즌 팀 주장을 맡아 현대캐피탈을 지휘하고 있다. 경기에 졌을 때는 삭발투혼도 마다하지 않았다. 평균 세트가 9.96개로 이 부문 5위지만 날개 없이 추락을 거듭하던 팀을 4위권에 안착시킨 공로는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횡재한 놈
'아기 곰' 서재덕(23ㆍKEPCO)이다. 올시즌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데뷔한 서재덕은 신춘삼 감독의 조련을 받으면서 배구에 대한 눈을 키웠다. 만년 하위를 전전하던 KEPCO가 2위를 넘볼 정도로 초강력 모드로 변신한 중심에 서재덕이 있었던 것. 슬로스타트(뒤늦게 발동이 걸리는 선수)서재덕은 1라운드에서 프로동기생 최홍석(23ㆍ드림식스)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 2~3라운드를 거치면서 안젤코와 함께 팀의 좌우 쌍포로 입지를 굳혔다. 수비력도 빼어나다. 블로킹은 10위, 디그(상대의 스파이크 공격을 걷어 올리는 것)와 리시브는 모두 팀 내 2위에 오를 정도다. 이에 따라 최홍석 최민호(23ㆍ현대캐피탈)와 펼치는 신인왕 레이스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이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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