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국내 양대 TV제조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3D와 스마트 기능이 없는 풀HD TV 모델을 단종시켰다. 양사의 국내 TV시장 점유율은 98%. 때문에 3D와 스마트기능을 사용할 줄 모르는 고령층, 첨단기능이 굳이 필요 없는 숙박업소나 병원에서도 꼼짝없이 최고 사양의 TV를 비싼 가격에 사야 했다.
하지만 두 달 후(10월 말) 이마트가 '드림뷰 TV'를 내놓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3D와 스마트기능이 없는 풀HD LED TV 32인치를 49만9,000원에 내놓은 것. 3D와 스마트기능을 가진 같은 사이즈의 삼성ㆍLG TV는 80만원이 넘는다. 고령가구와 숙박업소, 병원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이마트TV는 5,000대 물량이 며칠 만에 매진됐고, 다른 대형마트와 온라인몰도 잇따라 보급형 풀HD TV를 내놓는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5월 홈플러스는 골프클럽 세트인 '윌슨 딥레드 풀세트'와 '잭니클라우스 골든베어 풀세트' 800세트를 39만9,000원이라는 초저가에 기획 판매했다. 유명브랜드 가격은 최소 100만원대. 골프초보자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이 저가 골프클럽 세트도 2주 만에 매진됐다.
대형마트들이 내놓은 '반값'상품들은 모두 자체상표(PB) 제품들이다. 제조사에 직접 주문한 제품을 마트브랜드로 팔고 있다. 고급브랜드의 높은 가격에 지친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저가 PB상품들은 지금 '가격파괴'를 주도하고 있고, 콧대 높은 기존 유명브랜드(NBㆍ내셔널브랜드)를 위협할 수준에까지 이르게 됐다. 업계는 올해 PB와 NB의 대결이 한층 뜨거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가 1996년 국내 대형마트 최초의 PB 제품인 '이플러스(E-PLUS) 우유'를 선보인 이후 PB 제품의 비중은 현재 전체 매출의 4분의 1 정도로 급성장했다. 처음에는 가공식품 위주로 시작했으나 최근에는 패션, 가전, 레저용품 등으로 PB 상품의 종류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이마트 장중호 상무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PB 상품 수를 늘려나가 PB 비중을 2014년에는 35~40%까지 끌어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불황으로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데다 애초 논란이 됐던 PB제품의 품질이 점차 NB 제품과 맞먹는 수준으로 올라가자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지난해 이마트는 반값 TV외에 '반값 원두'로도 빅 히트를 쳤으며, 롯데마트는 '통큰 카레', 홈플러스는 절반가격의 생수로 NB제품들을 따돌렸다.
전문가들은 이런 PB 돌풍이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한상린 한양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유통업체들이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구매 데이터를 갖고 있는데다 교섭력도 있기 때문에 자체 상품기획 능력이 커졌다"면서 "까르푸 테스코 등 대형유통업체가 발달한 유럽에서는 이미 가공식품의 40%가 PB 제품"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PB제품을 우습게 봤던 제조업체들도 이젠 '반값'으로 무장된 돌풍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높은 가격만큼 가치를 지니는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거나 고객 충성도가 높은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마트 진열대를 PB제품에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 브랜드들은 PB제품과 경쟁을 위해 저가보급형 제품을 별도로 만드는 것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품질에 큰 차이가 없는 식품 종류와 달리, 기능과 사후 서비스 등에서 차이가 있는 대형 가전제품 등의 경우 PB제품이 NB제품의 아성을 단기간에 무너 뜨기란 힘들다. 하지만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은 "올해도 저가 보급형 제품들을 대거 출시할 계획"이라고 벼르고 있어, 가격파괴바람은 더욱 거셀 전망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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